룡정시 덕신향 금곡촌 제3촌민소조의 전야에는 77명 혁명렬사의 이름이 새겨있는 기념비가 우뚝 자리잡고있다. 렬사들은 장장 60년이란 긴 세월을 여기에서 고요히 잠들고있다.
이 마을사람들은 선후하여 3대가 대를 이어가며 렬사들의 영령을 위로하고 지키고있다.
64세의 로촌당지부서기인 현성덕의 소개에 따르면 렬사비는 1955년에 건설되였는데 77명 혁명렬사중 90%는 항미원조전쟁터에서 희생됐다. 후에 렬사비는 세번의 보수건설을 거쳐 끝내는 지금의 위치에 자리잡았다. 현성덕은 최초 렬사비는 마을변의 소나무숲에 건설되였고 대리석으로 세워졌다고 소개했다.
그는 당년 마을에서 대형 추모활동을 조직할 때 맨앞줄의 붉은기를 추켜든 사람들이 비석앞에 도착했을 때 대오의 뒤쪽 사람들은 아직도 마을을 벗어나지 못하는 광경을 볼수 있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77명 렬사가운데 2명은 현성덕의 친척인데 매번 그들의 이름을 볼적마다 현성덕은 자부심과 신성감이 넘치고 그 영광은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금곡촌에는 7세대 렬사가족이 살고있는데 매년 청명절이면 렬사가족들은 제물을 정성껏 준비해가지고 렬사비를 찾아 땅속에 깊이 잠든 가족을 기리고 가족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된 모든 영웅들을 추모한다. 년말이면 촌에서는 렬사가족과 군인가족들에게 기념품을 나누어주면서 렬군속들에 대한 경의와 위안을 표하기도 한다.
몇년간 세상을 뜨거나 다른 곳으로 이사가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마을의 렬사가족도 이젠 몇명 안 남았지만 현성덕과 촌민들의 렬사비에 대한 남다른 감정은 전혀 식지 않고있다.
촌간부들이 일때문에 마을을 돌다가 렬사비를 지나게 되면 꼭 산에 올라가 렬사비에 허리를 굽혀 인사한다. 마을의 한 할머니는 아버지가 렬사로 확인되여 첫 무휼금을 받고 특별히 렬사비를 찾아가 아버지의 영령을 기렸다고 한다. 50여년간 촌당지부와 촌민위원회, 공청단지부 등 책임자가 많이도 바뀌였지만 시종 청명절이면 촌민들을 이끌고 성묘활동을 하는 풍속은 끊어지지 않고있다.
현성덕이 촌공청단 지부서기로 되면서부터 전임 서기가 했듯이 청명절이면 전 촌의 청년단원들을 조직하여 성묘활동을 했다.
현성덕이 15살 나던 해 그는 제초기에 오른팔을 잃어버렸지만 왼팔로 렬사비주변을 깨끗이 청결하면서 반평생을 보내왔다. 그뒤로 현성덕은 생산대 회계, 촌민위원회 주임, 촌당지부서기, 로인협회 회장 등 직을 맡았다. 그는 후임 촌간부와 당원, 단원, 촌민들과 함께 렬사비의 안녕을 지키면서 정자를 세우고 배수구를 팠으며 렬사비주변에 울바자를 세웠다.
올해 46세인 왕국평은 6년전 금곡 제3촌민소조의 당지부 부서기 겸 촌감독위원회 주임으로 된후 촌민들을 이끌고 렬사비를 지켜가고있다.
왕국평도 역시 렬사의 후대이다. 그의 큰아버지는 해방전쟁에서 희생되였고 큰어머니가 희생되면서 큰아버지 렬사증은 그의 모친에게 전해지게 되였다. 하여 왕국평도 렬사비에 대한 감정이 아주 깊었다. 렬사비부근의 환경이 어지러워지면 그는 인차 달려가 깨끗이 청소하고 렬사비울바지의 페인트칠이 벗겨지면 또다시 새롭게 페인트를 칠하고 울바자가 넘어지면 다시 든든하게 못을 박았으며 정자우의 기와가 깨지면 제때에 새것으로 교체했다.
올해 청명날 아침에는 큰눈이 왔었는데 왕국평은 아침일찍 렬사비에 가 눈을 깨끗이 청소하기도 했다.
금곡촌의 촌민들은 바로 이렇게 대를 이어가면서 영렬들을 추모하는 영광스러운 전통을 계속하고있다. 해마다 청명절이면 꼭 먼저 렬사비를 찾아 영웅들을 기리고 그 다음 이미 세상 뜬 혈육들을 추모하러 간다.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늘 영웅들의 이름과 그들의 사적이 깊이 새겨져 있다. 영웅들의 이름은 천추에 길이 빛날것이다. /부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