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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

/박수서

참 오랜 기억이 능소화로 피었다.

방위복 벗어던지고 그 여자 집에 인사 가던 날,

익산터미널에서 시내버스타고 과덕까지 깊지도 짧지도 않은 맛

민어 부레처럼 밍밍한 길 털털 손가락으로 털고

차창 밖으로 초조한 마음 달래는 능소화 훌쩍 피어 있었다.

서울로 집 나간 자식처럼 한나절 문 밖에서 얼쩡거리다 방문 열고

안방에 들어앉았는데,

그 여자 아버지 썩을 썩을 하며 누룽지 씹는 말을 삼킨다.

“저런 풍신 같은 놈을……”



장인어른 빈소에 향을 꽂고 넙죽 인사드린다.

그 시절보다 능소화는 더욱 밝그레진다.



- 박수서 시집 ‘슬픔에도 주량이 있다면’중에서

 

 

 

집집마다 하나쯤 있을 법한 에피소드가 시가 되었다. 사귀던 여자의 집을 찾아가는 그날, 초조한 남자의 마음을 달래주었던 능소화가 한창이다. 금이야 옥이야 키워놓은 딸자식의 마음을 도둑질한 도둑. 남자답기는커녕 방위복을 갓 벗은 흰 피부에 작고 귀여운 박수서 시인에게 향하는 눈길이 고울 리 없다. “저런 풍신 같은 놈을…” 미덥지 못한 마음에 누룽지 씹는 말을 흘리던 그 여자 아버지도 별 수 없이 딸자식을 내어주었다. 시인에게도 예쁜 딸이 셋이나 있다. 장인어른의 마음을 백번 이해할 날이 머지않았다.

/김명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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