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산을 오르다보면 산과 함께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하루가 다르게 무성해지는 잎들과 그 안에서 공존하는 것들의 웅성거림을 들을 수 있다. 초록만큼이나 청량한 산새소리, 산의 고막을 찢을 듯 울어대는 매미소리, 그리고 낮은 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풀벌레 소리 등 많은 소리를 이끌고 산을 오르게 된다.
무엇보다도 웅장한 것은 계곡을 끌어내리는 폭포소리다. 산의 이야기들이 그 안에 다 담긴 듯 거침없이 쏟아지는 물줄기를 보면서 내 안의 상념을 폭포에 던져보기도 한다. 물줄기가 닿은 하류에는 또 그만큼의 사연이 담길 테고 누군가는 사연의 행방을 좇아 나서기도 할 것이다.
잠시 쉬었던 걸음을 일으켜 산을 오른다. 내가 오르고자 하는 정상은 높다. 몇 개의 능선을 넘어야 하고 때론 자일에 의지해 바위를 오르기도 해야 한다.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다.
그러나 나는 천천히 걷기로 했다. 산을 오르며 만나게 되는 풀꽃들과 눈을 맞추기도 하고 산새 소리에 잠시 귀를 내어주기도 할 참이다. 쉬어가라는 팻말이 있으면 배낭을 내려놓고 등줄기에 흐르는 땀을 식힐 것이다.
목청껏 소리 질러 되돌아오는 메아리에 화답할 것이며 이정표를 만나면 어느 길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에 빠져보기도 하고 결국 내 힘보다는 어려운 코스를 선택할 것이다. 선택한 길에 후회도 할 것이고 보람도 느낄 것이다. 가끔은 포기하고 싶은 유혹에 빠져들기도 하겠지만 정상을 향해 갈 것이다.
그리고 천천히 걸을 것이다. 정상에 도달하는 시간이 좀 더 오래 걸리더라도 앞만 보고 가지는 않을 것이다. 두리번거리다 잠시 내려다 본 산 아래 마을의 고즈넉함에 넋을 잃어보기도 하고 잠깐 내가 그 마을의 사람인 것처럼 그 들 속으로 잠입해 보기도 하면서 산을 오를 것이다.
무작정 앞만 보고 정상을 향하다 막상 정상에 도달했을 때 무엇을 보았는지, 무얼 향해 이토록 거친 숨을 몰아쉬며 왔는지 반문하는 어리석음은 피하고 싶다. 비록 정상까지 못 가더라도 산의 모습을, 세상의 모습을, 주변의 풍경들을 읽고 싶다.
바람에 뒤척이는 푸른 잎들의 움직임을 살펴보기도 하고 서로에게 기댄 채 살아가는 것들에게 한 수 배우며 천천히 사는 법을 깨닫고 싶다. 언제부턴가 조급증이 생겼다. 무엇이든 빨리해치워야 하고 서두르게 된다. 지인보다 한 걸음 먼저가야 하고 빨리 성취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젖어 있다. 그러다보니 삶의 진정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놓치게 된다.
한걸음 먼저 도착하여 느끼게 되는 잠깐의 기쁨 뒤에 오는 허망함을 맛보고 싶지는 않다. 결국 도착지는 한 곳이다. 천천히 걸으면서 이웃하는 사람들과 동행하며 순간순간을 가슴에 담으며 삶의 진정한 가치를 느낀 사람이나 앞 사람을 밀치고 상처를 주면서 먼저 정상에 오른 사람이나 결국 한 지점에서 만난다.
나만이라도 천천히 걷자. 걷다 힘들면 누군가에게 기대기도 하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어깨를 내주기도 하면서 걷자. 뒤꿈치에 잡히는 물집을 소홀히 하지 말고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이며 여유 있게 산을 오르자. 평생 올라야 할 산이다. 정상만 보지 말고 중턱의 풍경들에게도 눈길을 주면서 차근차근 산을 오르자. 결국 그것이 최고의 행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