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을 예술의 소재로 삼았던 예술가들이 있다. 많은 화가들은 자기 자신이야 말로 자기가 가장 잘 알고 있는 훌륭한 모델이기에 자화상을 즐겨 그린다. (모델을 구할 돈이 없어서 자화상을 그리기도 한다.) 마르셀 뒤샹, 앤디 워홀, 키르히너, 에곤 실레의 자화상들은 다른 작품들 못지않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데 대다수의 작품에 자기 자신을 계속 등장시키는 작가들이 있다. 그중 프리다 칼로와 신디 셔먼을 소개하고자 한다. 둘 다 여성 작가이며, 자기 자신을 작품의 주요 모티브로 삼았고, ‘여성’으로서의 성정체성을 작품에 적극 활용했으며, 무엇보다 적절히 쇼맨십도 지니고 있었다.
프리다 칼로는 강렬한 에너지를 전하는 자화상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예술가이며, 인생에서 갑자기 찾아온 불운과 고통을 집요하게 그린 작가이기도 하다. 모델로서의 그녀는 확실한 색깔을 지니고 있었다. 불굴의 의지를 가진 예술가, 남편을 사랑하지만 남편의 배신으로부터 고통 받는 여자, 멕시코 대지의 여신과 같이 아우라가 넘치고 조국을 애틋해하는 여인. 캔버스 안에서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 의상을 늘 입고 있었는데 사실 당시 멕시코인들은 이미 현대적인 의상을 입던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로가 결혼하면서부터 멕시코 의상을 입기 시작한 것은 그녀의 남편인 디에고 리베라의 바람 때문이기도 했고, 예술가로서의 자기 자신을 외부에 인지시키기 위한 전략으로서 그랬던 이유도 있다.
신디 셔먼은 프리다 칼로보다 50년 늦게 태어났고 미국인이었으며, 사진작가이다. 그녀는 수없이 변장을 하였고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녀는 작품 속에서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 커리어 우먼, 가정주부, 모델, 창부 등 계속 모습을 바꾸며 나타난다. 매 맞는 여자, 강간당하는 여자의 모습으로도 나타났으며, 명화 속 패러디의 주인공으로도 나타났고, 삐에로나 흉측한 마네킹으로 변장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시체가 되기도 했다. 변장을 통해서 여성 위에 군림하는 남자를 비웃었고, 여성을 상품화하는 매체들을 비꼬았으며, 다양한 인종, 직업, 그리고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그러한 경계들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렸다. 신디 셔먼은 소녀 시절부터 변장하고 종이옷을 만들어 입으며 거울놀이 하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한 그녀의 취미는 미술가가 된 후 전격적으로 작품에 펼쳐지게 된 것이다.
이처럼 시시각각 유동적이고 어떻게 보면 변태같은 작업들은 현대미술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신디 셔먼뿐만 아니라 프리다 칼로 역시 자기 자신을 표현할 때 꿈속이나 환상 속에서나 있을법한 기이한 형상이 나타나곤 하는데, 이를테면 사고로 부서진 척추를 부서진 고대 건축물의 기둥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자신의 몸을 사냥꾼의 화살을 맞고 있는 사슴 몸뚱이로 그리기도 했다. 이러한 기이한 형상이 캔버스에 등장하게 된 역사적인 배경에 프로이트라는 인물을 빼놓을 수 없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존재에 대하여 발표한 이래 수많은 예술가들은 눈에 보이는 ‘나’의 저편에 존재하는 무궁무진한 무의식으로서의 ‘나’를 열렬히 찾아다녔다. 이 광대한 어둠의 세계에서는 우리의 삶 속에서 찰나에 스쳤던 엉뚱한 생각, 꿈속의 얼토당토 말도 안 되는 장면들이 하나도 소홀히 여길 것이 아니게 된다. 정신분석학이 널리 받아들여짐에 따라 현실에는 있을 수 없는 기이하고, 이상한 형태들이 캔버스에 전면 등장하는 게 더 이상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무엇보다 본능적으로 세상에 논란거리를 던지고 싶어 안달하는 예술가들에게 무의식은 캐도 캐도 끝이 나지 않는 금광과도 같은 존재로 다가왔다.
프리다 칼로의 작업과 신디 셔먼의 작업을 정신분석학으로 분석하는 일은 학술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니 이만 줄이기로 한다. 다만, 신디 셔먼, 프리다 칼로와 같은 매력적이고 열정적인 여성들이 스타 기질을 발휘하여 초현실주의적인 구상으로 자기 자신을 표현했을 때 그 파급력이 어마어마하게 나타나곤 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