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꽃
/박무웅
그 꽃이 보이지 않는다
봉황천변,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흰 불꽃
나는 그 주인 없는 땅을 차지한
흰 꽃 무리의 지주(地主)가 좋았다
눈길 한번 주지 않아도
마음껏 꽃 세상을 만들어내던 개망초꽃
있어도 보이지 않고 보여도 다가오지 않던
그 꽃, 개망초꽃
땅을 가리지 않는 그
백의(白衣)의 흔들림이 좋았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멈춤’을 생각하니
내가 가진 마음속 땅을 모두 내려놓으니
거기 시간도 없고 경계도 없는 곳에
비로소
보이는 그 꽃
내 안을 밝히는 그 꽃
보여야 꽃이라지만
보아야 꽃이다
-박무웅 시집 「지상의 붕새」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피는 꽃들이 있다. 길가나 들판, 천변에서 자라나 꽃을 피우는 식물들은 대체로 강하다. 아무런 것도 개의치 않고 오종종 모여 한 무리를 이루고 살아가는 개망초는 나름 지닌 그 하얀 색깔과 모양이 참 예쁘다. 또한, 고 작은 꽃을 마음껏 피워 제 생명력을 다하는 모습은 대견하기까지 하다. 이렇듯 제대로 갖추어진 조건이나 아무런 바람도 없이 살다가는 꽃, 누가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어떤가, 크고 화려해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지 않으면 어떤가. 내가 선 자리 그곳에서 최선을 다해 살다 가는 것도 분명 아름다운 삶일 터, 우리는 때로 이렇게 작은 꽃 앞에서 나를 내려놓으며 내 안을 밝힌다. /서정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