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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정조의 건축]부용정(芙蓉亭) (上)

 

전통정원에서 아름다운 곳을 이야기할 때 민간에서는 담양 소쇄원을, 궁궐에서는 부용지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먼저 소쇄원은 보면 이곳의 전경은 한눈에 보이지 않는다. 자연계류 주변의 지형 사이사이를 이용하여 만든 별서건축이기에 건물보다는 자연이 주체이기 때문이다. 화려한 풍광보다는 자연과 동화되는 촉각적 장소이며,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와 그 뒤를 따르는 바람 소리가 자연의 푸름에 더 빠져들게 하는 곳이다. 이에 반해 부용지의 영역은 소쇄원보다 크지만 한눈에 들어온다. 같은 자연 속에 있지만, 넓고 터진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용정과 연못, 원도, 어수문, 계단, 화계, 주합루가 큰 하나의 축을 이루어 경직된 느낌을 줄만도 하지만, 배경의 녹음(綠陰)과 조화되어 자연과 인공의 조화로운 풍광을 보여주고 있어 ‘왕의 정원’에 대해 진수를 보여주는 곳이다.

정조가 짓은 부용정 상량문(1793년)에 의하면 “마침내 봉래선인(3산- 봉래산, 영주산, 방장산으로 仙人이 사는 곳)의 영역에 부용정을 지었으니…, 이곳에 있으면 마음이 잔물결에 씻은 것처럼 깨끗하니 바로 군자(君子)임을 알겠도다.”라 적고 있다. 정조는 이곳이 봉래선인(蓬萊仙人)이 사는 신선한 곳이며, 물가 궁전(부용정)에 앉아 있으면 군자가 된 느낌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극찬하였다.

부용정은 정조가 신하들과 이 신선의 공간을 함께 즐기고자 만든 장소이다. 이전은 왕이 혼자 즐기는 장소이기에 작은 섬(中島)에서도 활동이 가능했지만 신하들과 함께하기에는 섬이 좁아서 큰 공간을 만들기 위해 물가 이동하게 된다.

부용정의 평면은 십자(+)로 되어 있는데, 쉽게 볼 수 있는 형태는 아니다. 십자형태의 건물 사례로 십자각이 있는데, 이는 궁궐의 모퉁이에서 외부감시와 권위를 보여주기 위해 2층이고 X·Y방향으로 정면성이 되어 있으며, 경복궁의 동십자각, 창경궁의 홍화문(정문) 좌우 십자각, 수원화성 동북각루인 방화수류정 등이 현재 남아있다.

그러나 십자각이 궁궐의 모퉁이에서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고, 중요한 것을 보관하는 건물에도 십자형식을 사용되었다. 궁궐(宮:큰집+闕:궐패)은 중국 ‘황제의 패’를 보관하는 큰집의 뜻인데, 조선 전기 명나라 시기에는 경복궁과 창덕궁 정전의 문 옆에 궐패를 보관하는 십자각이 있었고, 조선 후기 청나라 시기부터는 배청사상으로 인해 십자각을 세우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나라 고대 사찰이나 중국의 오래된 사찰을 보면, 법당 앞에 십자각이 있는데 여기에 경전을 보관한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 이처럼 십자각은 중요한 것을 보관하는 중요한 건물임을 알 수 있다.

부용정(芙蓉亭)은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부용은 연꽃을 말하는 것이다. 건물형태가 정형으로 기하학적이며 완전성을 가졌기에 이와 비슷한 연꽃을 선택하였다고 보인다. 또 연꽃의 의미는 진흙 속에서도 맑고 깨끗한 꽃을 피우기에 고귀한 식물로 인식하고 있어 이곳을 이용하는 정조와 그의 신하(초계문신)들은 기존의 권력층과 다르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지 않을까 한다.

또 중국의 역사에서도 부용에 대한 자료가 있다. 섬서성(陝西省) 서안(西安)에는 대규모의 연못인 곡강지(曲江池)가 있는데, 이곳의 한편에 수, 당시기에 황실에서 만든 부용원(芙蓉園)이라는 황실정원이 있다. 학문의 조예가 깊은 정조가 이를 모를 리 없기에 이를 차용하였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부용정의 뜻이 어디에 있든, 부용정의 건축 의미는 금원이 ‘나의 정원’에서 ‘우리의 정원’으로 변하는 중요한 시점에 서 있는 건물이다. 정조는 매해 봄이면 규장각신들과 그의 친지들을 이곳에 초대해서 꽃구경을 하고 낚시질과 뱃놀이를 즐겼으며, 아름다운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시(詩)를 지어 부용정에 걸기도 하였다.

수많은 조신들이 춘당대에 모이어라(??簪?簇春臺)/ 술기운 꽃향기 속에 비단 돛을 펼쳤네(酒氣花香錦帆開)/ 여러 신하의 자제들에게 말 이르노니(寄語諸臣家子弟)/ 평생에 이 연회의 술잔을 잊을 수 있으랴(平生能忘此筵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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