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주가 미국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지도를 살펴보았지만 한국과 어떤 인연이 있는지는 찾지 못했다. 오래전 인디언들이 집단 거주하던 곳이고 멕시코와 가까워 혼혈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라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 ‘카우보이 아리조나 카우보이, 광야를 달려가는 아리조나 카우보이, 말채찍을 말아들고 역마차는 달려간다. 저 멀리 인디언의 북소리 들려오면, 고개 넘어 주막집에 아가씨가 그리워, 달려라 역마야 아리조나 카우보이’. 정확한지 모르나 필자의 기억에 남은 노래가사이다. 1960년대 중학교 시절, 크린트이스트우드와 같은 총잡이 마초들이 서로 배신하는 결속단체인 ‘석양의 무법자’들을 상상하며 의협심을 키웠고 또 이런 분위기가 당시 한국의 청소년 문화이었던 것 같다. 요즘 청소년들의 우상은 당연히 K-Pop이겠지만 필자의 청소년 시절은 특별한 우상이 없었고 성장하여 되고 싶은 직업도 많지 않았다. 도대체 아리조나 카우보이와 내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동네 어귀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이 노래를 흥겹게 부르며 돌아다녔는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어린마음에 무질서하고 폭력이 난무하는 마을에서 악당을 물리치고 평화의 마을로, 질서 있는 마을로 정착시키는 역할에 반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석양의 무법자들도 무법자들이었다. 위 노랫말을 보면 그런 무법자들에게도 로맨틱한 낭만이 있어서 심신을 충전시켰던 것 같다.
이런 점에서 마도로스도 유사했다. 카우보이의 상징이 총이었다면 마도로스들에게는 담배 파이프가 있었다. 몇 달을 망망대해에서 보내고 상륙을 하면 제일 먼저 찾았던 곳이 선술집이었다고 하니 강한 마초들도 모두 이성에 대한 외로움 앞에서는 별 수 없었나 보다. 역대 국가 원수들이나 대기업 회장들의 여성 염문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큰 권력과 부로 못할 것 없겠지만 유난히 이성문제가 입소문을 타는 것은 정점에서의 외로움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양보해 본다.
지난 8월25일 새벽 전쟁촉발을 목전에 두고 남북 대표 네 명이 43시간 연속 진통회의 끝에 합의문을 채택하면서 전쟁촉발의 긴장상태를 완화시켰다. 이것은 실과 득을 떠나서 남북 간의 몇 가지 현안에 관해 한 획을 그은 역사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 고위 회담자들이 서로 참지 못하고 카우보이처럼 행동했다면 남북 모두 불구가 되었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전쟁과 테러는 참전하는 군인과 그 가족만의 상처가 아니라 온 국민이 참혹하게 되는 죽음의 길이다. 과거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인디언들과 아프리카인들을 살육하고 독일 나치가 유태인들을 살육하고 일본인(군)들이 한국인들과 중국인들을 살육했던 것을 그저 지나간 과거의 사건으로만 치부하기 십상인 것은 지금은 모두가 온전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시대로 돌아가 내 가족이 살육을 당한 것을 또렷이 목도한 사람이 지금도 살아있다면 과연 용서라는 것이 쉽게 가능할까.
여전히 북에서 월남한 실향민들과 또 남한에 정착한 탈북인들의 공산당에 대한 증오는 65년이 흐른 지금에도 남한사회에서는 여전히 유효하다. 다함께 통일을 염원하면서도 어느 쪽에서든 무력으로, 혹은 물질로 통일을 바라지 않는 것은 과거의 깊은 상처와 통일 후의 예상되는 것들에 대한 우려때문일 것이다. 박 대통령이 중국 전승기념일에 참석한 것은 과거 중국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동북아 힘의 균형과 경제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표현이라고 한다면 미국과 일본, 그리고 북한의 심기가 그다지 편할 수만을 없었을 것이다. 정부는 외교적 군사적 전략으로 결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은 영원히 패권주의를 지향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카우보이가 세력 넓혀가듯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긴 세월 힘이 쎈 카우보이들의 틈바구니에서 헤쳐 나온 대한민국은 어느 틈에 카우보이 대열에 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미숙하고 아직은 역량이 부족한 소심한 카우보이지만 나중에라도 강대국 카우보이들이 해왔던 길은 따라가지 않았으면 한다. 낭만도 있고 함께 어려운 이웃국가들과 그리고 우리의 동포들과 함께 말방울 울리며 주막을 향해 달려가는 그런 카우보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