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너머 환하게 피어난 백일홍을 배경으로 한 폭 그림이 펼쳐진다. 햇살에 섞여 날아오르는 파랗게 들뜬 하늘을 배경으로 그려지는 가을이라는 그림. 높게 펄럭이는 그 가을이야말로 외로움에 지친 솔로들을 자극하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유난히 바람 서늘해지는 가을이면 결혼식 소식을 더 자주 만나게 되니 말이다. 물론 그들의 대열에 끼어 나 또한 이 9월에 결혼을 했었다.
철모르는 20대, 남들이 한다니 나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겁 없이 저질러버린 어른이 되는 관문. 나에게 맞는 나만의 결혼식 같은 건 생각도 못해보고 흔히 하는 수순에 맞추어 얼떨결에 치룬 결혼식이었다. 가족친지들을 불러들이고 주례의 주례사에 몇 번 고개를 주억거리다 우르르 몰려가 한복으로 갈아입고 폐백 드리고 신혼여행을 떠나는 예식장에서의 맞춤형 결혼식. 요즘 와서 생각하니 그 결혼식이야말로 불과 몇 분 만에 끝나는 어이없는 판박이 의식이었다는 생각에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다양한 방법으로 색깔 있는 결혼식을 진행하고 있는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결혼식도 트렌드에 맞게 끊임없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결혼식에도 그 시대의 문화와 사회의 모습이 담겨있게 마련이다.
신세대 결혼관은 옛날 어른들과는 사뭇 달라진 듯 보인다. 남에게 보여주는 예의를 따지는 결혼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결혼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결혼식을 사진전으로 대신하는 커플을 보았다. 그동안 두 사람이 사랑을 키워오면서 함께 했던 순간들을 사진으로 뽑아 몇 일간 전시를 하고 지인들을 초대하는 것으로 결혼식을 대신하는 결혼 사진전. 와글와글 사람들이 몰려들면 30분 만에 끝나버리는 식상한 결혼식에 비해 신랑신부와 더 가까이서 그들을 이해하고 축하해 줄 수 있어서 좋아보였다. 그 외에도 스몰웨딩 운운하며 소규모로 소박하게 치루는 여러 방법의 결혼식 등. 결혼식에 들어가는 불필요한 경비를 최대한 줄이고 앞으로 살아갈 주택이나 혼수, 가구 등에 투자할 줄 아는 그들의 특징. 물론 경기불황이라는 큰 흐름도 영향을 끼쳤겠지만 결혼을 앞둔 장성한 자식을 둔 부모들의 입장이라면 스스로 살아가려는 그들의 모습이 오히려 대견해 보일 수도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람 또한 맞추어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 아닐까.
내일은 또 조카의 결혼식이 잡혀있는 날. 향기로운 소국에 백일홍 환하게 피어 있을 그 소담한 정원에서 넘치게 푸른 가을하늘 더불어 소규모 하우스 웨딩으로 한다는 말에 약간의 기대를 하고 있다. 작지만 소박한 또 다른 어떤 이벤트가 펼쳐질까하는 생각에서 말이다. 신세대 커플들의 상큼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또 한 번의 멋진 추억을 기대해 봐도 될는지. 기존의 형식 또한 충분히 의미 있는 그들만의 멋진 이벤트였음에 분명하지만 시대가 변하듯 충분히 이유 있는 변화를 거쳐 온 일생에 단 한 번뿐인 결혼식. 어쩌면 긴긴날 함께 꾸려갈 그들만의 새로운 인생의 시작을 그들만의 아이디어로 신고식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물론 본인들이 초대한 함께 하는 하객들을 어느 정도는 배려할 줄 아는 결혼식 정도로 말이다.
▲‘시와사상’ 등단 ▲한국 에세이 작가연대 회원 ▲한국본격수필가협회 회원 ▲평택문협 회원 ▲독서토론논술 문화원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