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어느 날 히틀러는 스포츠카 엔지니어 페르디난트 포르셰 박사를 집무실로 불렀다. 그리고 독일 국민이 탈 수 있는 가족용 소형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렸다. “어른 두 명과 어린이 세 명이 탈 수 있어야 하고, 연료 1리터로 14.5km 이상을 달릴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정비가 쉽고 찻값은 1천 마르크 이하인 자동차를 만들라.” 히틀러가 제시한 차 가격은 당시 작은 모터사이클 가격에 해당하는 것이다.
포르셰는 그로부터 4년 뒤인 1938년 히틀러의 지시대로 소형차를 탄생시켰다. 그것이 지금까지도 유명한 딱정벌레 모양의 폴크스바겐 비틀이다. 독일말로 ‘국민차’란 뜻이기도 한 폴크스바겐이 본격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1948년이다. 차가 선보이고 곧바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히틀러의 몰락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특히 나치 독일에서 설계되었다고 해서 한때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불리며 생산이 유보되기도 했는데 탁월한 경제성과 품질로 독일은 물론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독일 내에서 국민차로 칭송 받으며, 2차 대전 종전 이후 서독 경제 기적의 상징이 되었던 폴크스바겐은 생산 이후 지금까지 성능과 편의성은 끊임없이 개선했지만 외형은 거의 유지한 채 2003년 단종 될 때까지 2100만대 이상이 생산됐다. 단일 모델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숫자다.
폴크스바겐이 세계적 자동차회사로 성장하게 된 동기는 미국 시장에서의 성공이다. 그리고 성공의 비결 중 하나가 광고였다. 1950년대 초 미국에 진출하면서 대대적으로 홍보한 ‘작게 생각하라(Think Small)’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자동차란 크면 클수록 좋다는 기존 미국의 인식을 바꾸어 놓은 결과다. 그 후 승승장구한 폴크스바겐은 현재 생산 대수만도 연간 600만대에 이르고 30만 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세계 2위의 자동차 왕국이 됐다. 세계 자동차 회사 중 연구개발비를 가장 많이 쓰는 것으로도 정평이 나있다.
이런 폴크스바겐이 최근 디젤차의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조작한 것이 밝혀져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거짓은 신뢰를 무너뜨리고 재앙까지 불러온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생각나게 한다. /정준성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