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 남쪽
/강인한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비는
싱싱한 초록이다
보랏빛 남쪽
하늘을 끌어다 토란잎에 앉은
청개구리
한 소쿠리 감자를 쪄 내온
아내 곁에
졸음이 나비처럼 곱다
- 강인한 시선집 ‘신들의 놀이터’/ 책만드는집
한 편의 시가 주는 감정은 다채롭다. 위 시를 읽으면 대부분 평화를 느낄 것이다. 평화란 ‘전쟁이나 갈등이 없이 평온함’을 이른다. 오랜 가뭄이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게 큰 고통이다. 그때 내리는 비, 그때 만나는 지상의 표정들, 토란잎에 맺힌 물방울, 보랏빛 남쪽을 옆구리에 두른 청개구리의 포즈(아마도 비는 보랏빛 하늘에서 오지 않을까, 그래서 청개구리가 더 사랑스러운), 아내가 쪄 내온 잘 익은 감자까지 있으니 더할 나위 없다. 걱정이 사라졌으니 가벼운 졸음이 쏟아질 테고, 아내 곁에서 졸고 있는 지아비의 풍경은 평화의 으뜸이다.
/이미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