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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풀어본 무예]칼의 환상을 조심하라

 

일본은 어떤 나라인가? 일본 국민들의 머리 속을 채우고 있는 ‘무(武)’와 ‘무사(武士)’는 어떤 빛깔이며 어떤 성격을 갖는가? 일본은 왜 자위대의 힘을 키우려 하는가? 이런 다양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은 아마도 책읽기를 통한 이해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일본 전통시대의 근간을 이루는 무사집단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 놓은 니토베 이나조(新渡戶稻造)가 쓴 ‘일본의 무사도’(1899)를 읽어 본다면 그들의 ‘武’에 대한 의식과 전쟁에 대한 개념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니토베 이나조(1862∼1933)는 한때 일본 5천엔 지폐 속의 인물로 등장할 정도로 일본 내에서는 최고의 지식인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특히 일본 ‘식민학의 비조’로 여겨질 만큼 조선에 대한 멸시와 노골적인 침략야욕을 만천하에 공공연하게 떠벌린 인물이었다.

그는 이 책을 통해서 당시 서양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의 무사도 정신을 일본만의 고귀한 정신적 산물로 승화시키려 했다. 일종의 ‘만들어진 역사’ 중 하나다. 그래서 무사도가 어디서부터 출발했고, 현재 일본인들에게 무사도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가에 대한 설명까지 자세하게 펼쳐놓고 있다. 예를 들면 무사들이 국가나 주군에 대한 충의와 복종을 지상 최고의 과제로 삼아 그것을 명예라는 이름으로 재탄생시키는 과정뿐만 아니라 불명예를 씻기 위한 자살의 방법인 할복을 예술적 미학의 단계까지 끌어올리는 것들이 대표적이다. 특히 무사에게 칼(刀)이 갖는 의미를 극대화시켜 말 그대로 칼 하나로 일본 무사의 모든 것을 설명할 정도로 이 책에는 일본인들의 ‘武(무)’에 대한 생각을 이상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심지어 책을 몇 번 정도 심도 있게 읽어 보면 나도 모르게 그 논리에 푹 빠져 일본 무사도에 대한 동경과 환상이 자리잡을 정도로 무서우리만큼 논리적인 책이다.

이 책에서 일본 무사도를 설명하는 방식은 무척이나 합리적으로 보인다. 서양의 비슷한 사고 방식과 교묘히 비교 혹은 가치 전환시키는 논리전개를 사용하여 서양의 독자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한 서술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종국에는 일본무사들이 가졌던 무사도는 곧 그 자체가 삶의 과업이며, 어느 누구에게도 간섭이나 상처받지 말아야할 가장 고귀한 가치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런 가치판단의 흐름은 2차세계대전시 일본의 자살폭격기인 ‘가미가제’의 정신적 주춧돌이 되었다. 당시 전쟁의 상대국이었던 미국인들은 국가를 위해 아무런 망설임 없이 자신의 몸을 던지는 일본 조종사들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으며, 이러한 무사도 정신을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을 탐독하기도 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데로 ‘일본의 무사도’는 명확하게 일본의 무사도를 추앙하기 위해 지극히 교조적 관점으로 쓰여진 책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주 독자인 서양인들은 그것이 진실인양 모든 것을 받아들여 소위 말하는 일본무사 ‘사무라이’에 대한 환상에 깊이 사로잡히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일본에 대한 생각은 독특한 무사의 나라이며, 이러한 전통이 이어져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정도의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나라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킬빌’이나 ‘라스트 사무라이’ 등 서양영화 속에 등장하는 일본무사는 추앙 받는 무사로, 그리고 그들의 정신인 무사도는 서양인들이 결코 흉내낼 수 없는 일본의 고귀한 산물로 표현된 것이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도 그와 유사한 일본의 무사도 정신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팽배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전통시대의 무인 혹은 무사의 상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완전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지 오래다. 과연 우리는 전통시대의 무인의 정신 혹은 삶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어떤 작업을 해왔는지 반성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벚꽃과 칼…. 그리고 무사도 정신은 이미 일본을 대표하는 그들 문화의 상징체계다. ‘일본의 무사도’에는 그들 특유의 멋스럽고도 고귀한 미학이 너무나 아름답게 포장되어있다. 그러나 그 뒷면에는 칼날에 흐르는 잔인하고, 살벌한 피의 냄새가 늘 함께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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