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역사상 윤리 도덕은 물론, 법적으로도 끊임없이 금지하고 있었으나 끝내 금지시키지 못한 행위(직업) 중 하나가 매춘(賣春)이다. 인간본능과 관계됨으로써 혐오(嫌惡)적이지만 국가권력으로도 완전히 종식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완전금지나 합법화하는 엄두조차 못 내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태평양전쟁 패전 직후, ‘특수위안시설 협회(RAA·Recreation and Amusmen Association)’라는 단체를 만들어 매춘을 합법화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와 지도층 남자들은 젊은 여성들을 조직하여 사창가로 보낼 필요가 있다고 결정하고 매춘을 종용했다. 매춘 지원자 모집광고에서는 “전쟁 중에 수많은 젊은 남자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희생했으니, 이제는 젊은 여성들이 조국을 위해 봉사할 차례가 아닌가?”라고 했다. 패전 직후 일본의 식량사정은 절대로 부족했고 생활조건은 암울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그리고 하루에 주먹밥 한 개로 겨우 연명해야 했던 상당수의 젊은 여성들은 그 역경을 견디지 못하고 자포자기의 상태로 모집에 응해야 했다.
일본 정부는 왜 매춘을 합법화고 젊은 여성들을 성노예로 내 몰았을까? 대다수 여성들의 정조를 점령군의 만행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섣부른 결정으로, 국가는 수많은 여성들을 성노예로 내몰아, 천추(千秋)의 한을 남기게 했다. 일본이 시작한 태평양전쟁은 단순히 피비린내 나는 살육(殺戮)전을 훨씬 넘어,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야만적인 광란이었다는 것이 공인된 기록이다. 중국 난징에서는 일본군의 무차별 학살을 제외하고도 여성들에게 집단적인 윤간으로부터 야만적인 구타와 신체훼손에 이르는 성폭행을 자행했다. 그래서 일본의 지도자들은 점령국에서 저질렀던 야만적인 행동으로 미루어 볼 때, 점령군인 미군은 오히려 더 잔혹하게 보복할 것이라는 지례짐작으로 내린 결정이다. 그러나 미군들의 강간사건은 의외로 발생하지 않았고, 서독에서처럼 돈으로 성을 구매하는 매춘을 선호했다. 일본정부가 지례짐작으로 서둘러 매춘을 합법화하지 않았더라면, 시장의 필요에 따라 사창가는 지하시장으로 어느 정도 확산되기는 했겠지만 여성들의 피해는 그렇게 크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대다수의 평가다.
그래서 일본정부는 ‘위안부’라는 말만 나와도 쥐구멍을 찾아야 할 판이다. 치욕적인 과거사를 상기시켜 국가의 정체성을 손상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7년 미 하원에서 ‘성노예 결의 안’이 통과됐을 때와, 1996년과 1998년 유엔 인권소위원회가 ‘위안부 배상요구 결의’를 했을 때, 2014년 앙굴렘 국제만화 페스티벌에서 위안부관련 전시를 할 때, 일본 정부와 언론은 작심하고 침묵해야만 했다. 다른 배상문제는 순순히 응하면서도 위안부 문제만 나오면 펄쩍 뛰는 원인은 그런 속내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정부가 고심 끝에 궁여지책으로 짜낸 방안이, 바로 ‘일본 민간인기금 보상 안’이다. 그러나 한국의 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정부의 법적 배상도 아닌 ‘일본 민간인기금 보상’을 받아들일 리(理)만무하지 않은가. 김영삼·이명박 정부가 일본의 그런 속내를 모른 채, 위안부 문제를 호기 있게 다뤄봤지만, 별무성과로 끝낼 수밖에 없었다. 박근혜 정부 역시 지난달 2일, 3년여 만에 한·일정상회담을 열었지만, ‘빠른 시일 내’에 타결하자는 약속으로 끝냈다. 아베 총리는 한국정부가 물 밑 작용으로 조용히 협상해 줄 것을 기대하겠지만 그럴 경우 한국정부는 야당과 피해자들(군 위안부), 그리고 시민단체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이냐 라는 어려운 문제를 떠안게 된다. 과연 아베총리가 어떤 결단으로 일본 내의 그 복잡한 문제를 깨끗이 해결하고 타결에 나설지…? 아베 정부로서는 그 문제가 불거질 경우, 헌법 제9조를 개정하여 마음대로 군비를 확장하고 전쟁을 감행하던 지난날의 강군대국을 실현하려는 야망이 허무하게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시대상황을 역행하는 야망은 곧 환상이라는 꿈에서 하루빨리 깨어났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