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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맑은 11월 초입, 극락전 마당으로 우수수 낙엽소리 밟히고 있었다. 스치는 바람에도 온 몸 각을 세우고 바스락거리는 한 때의 청춘을 몸에 지녔던 마른 나뭇잎. 그 몸의 아우성을 들으며 올라선 법당 안에서는 이미 와글와글 수능기도 소리 넘치고 있었다. 합장하고 무릎 꿇은 나와 그들이 올리는 이 간절한 기도의 뿌리는 무엇일까. 그 뿌리에 다닥다닥 매달려있는 무엇을 달라는 소리. 그것이 무엇이든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그 무엇에 또 다른 무엇이 더해지기를 원하는 것이니 그 또한 욕심이란 생각을 해 보았다. 자야는 온 몸으로 내려놓을 줄 알았지만 나는 차마 버리지 못하고 있는 그 욕심 말이다.

욕심은 끝이 없다. 안 되는 줄 알면서 헛물이라도 켜보는 상상속의 욕심에서부터 하나라도 더 갖고 싶은 물욕까지. 어쩌면 나는 그 샘솟듯 피어나는 욕심의 근원 때문에 하루하루를 살아 왔는지도 모른다. 한성대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오는 길에 올려다본 담장 높은 집들의 정원은 왜 그리도 멋있었는지 아니 위압적이었는지. 그곳 테라스 어딘가에서 여유롭게 차를 마시던 여인의 모습이 오롯이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다는 건 풀풀 냄새나는 내 욕심이 여전히 발효 중이라는 말이다.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이기에 과감하게 포기할 줄 알았던 그 아름다운 여인 자야를 만나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대원각 그 화려한 명성을 어찌 포기할 수 있었을까. 평범한 사람이라면 평생을 좇아도 얻기 힘든 그 엄청난 돈을 미련 없이 세상 사람들에게 척, 내어놓을 줄 알았던 그 대범한 여인의 마음. 백석이 사랑하는 그녀에게 지어준 이름, 자야. 마침내 길상화로 이름을 남기고 간 그 마음엔 물욕보다 더 고귀한 무엇이 있었음에 분명하다. 키 낮은 담장을 돌아 오른 진영각. 궁색한 빈털터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야말로 홀가분한 삶이 되는 것이라 했던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맑은 가난을 선택한, 자야가 존경한 법정스님의 소박한 의자 앞에 서보았다. 비로소 그 의자만큼이나 환하게 웃고 있는 비울 줄 알았던 그분의 미소가 보였다. 결국엔 우수수 떨어질 잎 애써 매달아 두려 하지 않고 바람 부는 대로 홀가분하게 하나씩 하나씩 떨굴 줄 아는 느티나무처럼 여유로운 미소 말이다.

그 푸근한 미소 앞에 서자 작은 것에 연연하며 쉽게 버리지 못하고 앞만 보고 달려온 내 지난 시간들이 윙윙거렸다. 아버지 여의고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 하시던 말씀까지도 자꾸 떠올랐다.

‘야야, 돈 그거 아무 소용없데이. 니 아버지 봐라. 돈 있으면 뭐하겠노? 아프고 병들어 죽으면 그뿐인기라. 그 돈 너무 아끼지 말고 먹고 싶은 거 먹고 하고 싶은 거 하고 나누면서 살아야제. 자꾸 쟁기는 것 보다 꼭 필요한데 쓸 줄 알아야 그게 돈인기라.’

흰 당나귀를 타고 끊임없이 산골로 가고 있는 시 속의 나타샤, 자야를 만나고 길상사 돌아 내려오는 길. 감잎 다 떨구고도 알몸으로 또 까치밥 보시를 시작한 감나무를 올려다보았다. 그 밑으로 꽃인 듯 활짝 피어 묵언수행 중인 단풍나무 붉은 낯빛, 마치 나를 보는 듯 했다. 오래도록 묵언수행이 더 필요할 어리석은 나 말이다.

▲‘시와사상’ 등단 ▲한국 에세이 작가연대 회원 ▲한국본격수필가협회 회원 ▲평택문협 회원 ▲독서토론논술 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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