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에서 관행처럼 이뤄지던 일명 ‘표지갈이’로 인해 대학교수 179명이 재판에 넘겨지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의정부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권순정)는 14일 표지갈이 수법으로 책을 내거나 이를 눈감아준 혐의(저작권법 위반·업무방해)로 변모(55)씨 등 전국 110개 대학 교수 74명을 기소하고 105명을 약식기소했다.
약식기소된 교수 가운데 허위 저자에게는 상한액인 벌금 1천만원을, 원저자에게는 벌금 300만원을 각각 부과했다.
검찰은 또 이들과 짜고 책을 낸 임모(72)씨 등 4개 출판사 임직원 5명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전공서적의 표지에 적힌 저자명을 자신의 이름으로 바꿔 새 책인 것처럼 출간한 혐의다.
조사 결과 이들은 소속 대학의 재임용 평가를 앞두고 연구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으며 이중 일부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책 제목에서 한두 글자를 넣거나 빼는 수법을 쓰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일부는 한번 표지갈이를 했다가 출판사에 약점을 잡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이름을 빌려주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책을 쓴 교수(원저자)들은 표지갈이 책들이 버젓이 유통되는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사건은 원저자는 이공계 서적을 꺼리는 출판업계의 특성 때문에 앞으로 책을 낼 출판사를 확보하고자 표지갈이를 묵인했고 허위 저자는 연구실적을 올리는데, 출판사는 비인기 전공 서적 재고를 처리하는 데 각각 표지갈이가 필요하는 등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벌어진 사건이다.
특히 출판사들은 교수들이 다른 곳에서 책을 내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으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검찰은 전했다.
검찰은 이번에 적발된 교수의 명단을 해당 대학에 통보하고 ‘연구부정행위 전담수사팀’을 편성해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한편 검찰은 지난 8월부터 저작권법 위반 고소 사건을 수사하던 중 단서를 확보, 표지갈이 혐의가 있는 교수 217명을 적발했으며 이 중 저작권법 위반 공소시효 5년이 지난 교수와 법적용이 애매한 교수, 해외 연수 교수를 제외한 211명을 소환해 조사했다.
이후 소장용으로 발간했거나 책을 낼 때 일부라도 참여한 교수 32명을 무혐의 처분하고 179명만 기소했다.
/의정부=박광수기자 k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