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립문자不立文字
/김백겸
카메라 셔터를 누른 내 심장이 겨울 느티나무 숲을 찍어왔네
고인도에서 ‘신의 춤’ 으로 불렸던 검은 나뭇가지들의 ‘무드라’ 였는데
몇 십 년 동안에 표현 하나가 이루어지는 목숨의 춤이었네
바람이 불자 겨울 느티나무 가지들은 일제히 침묵의 춤을 추고
은빛 오로라가 가지에서 촛불처럼 타오르네
태국 무희들이 손가락과 함께 춤을 추는 한 장면을 칼로 자른 듯
겨울 벌판의 느티나무는 푸른 잎들 모두 떨어뜨리고
무드라 동작의 시바춤을 불립문자처럼 보여주네
- 김백겸 시집 ‘기호의 고고학’
한겨울 빈 나무들만 남은 숲은 황량하다. 간혹 바람이 들었다 갈 뿐 적막만이 무성하게 가지를 뻗는다. 하지만 시인은 이런 삭막한 겨울 숲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가슴으로 찍어온 먼 여행지의 그 겨울 숲에 이국의 어느 한 장면을 삽입해 새로운 풍경을 만든다. 그리하여 푸른 잎들 모두 떨어뜨린 느티나무는 무드라 동작의 시바춤을 불립문자처럼 보여주고 춤을 추는 그 나무에서 타오르는 은빛 오로라는 우리를 신비의 세계로 인도한다. 무드라는 일반적으로 수인(手印)을 가리키며 소통의 상징이라 한다. 우리에게 시공간을 뛰어넘어 떠올리게 하는 태국 무희들의 아름다운 춤, 이 시로 인해 이제 우리는 빈 가지만 남은 나무를 한 번 더 보겠다. 몇십 년 동안에 표현 하나가 이루어지는 목숨의 춤을 추고 있음을 알겠다. /서정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