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떤 사회가 당국이나 종교단체의 항의도 받지 않은 채 채소나 육류 대신 인간의 시신을 냉동창고에 보관하는가? 도대체 어떤 사회에서 이른바 경보체계라는 것이 수천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아파트 안에서 고통 받는 것을 알리지 못하는가? 도대체 어떤 사회에서 정부가 넘쳐나는 환자들을 의료진에 내 맡긴 채 바캉스를 즐기고, 야당이 우리 문명의 본질을 드러낸 비극을 갖고서 부끄러움도 없이 정쟁을 벌일 수 있는가? 그 죽음의 주 원인은 더위도 아니고 노화(老化)도 아니었다. 그것은 고독이었다.”
2003년 여름 폭염 때문에 프랑스 시민 1만 1천435명이 떼죽음을 당하였을 때 프랑스의 지성을 대표하는 문명비평가 자크 아탈리가 한 말이다.
특별히 자크 아탈리가 격앙한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사망자 가운데 81%가 75세 이상의 노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노인들의 죽음을 ‘더위’ 탓으로 보지 않았고, ‘고독’ 탓으로 보았다. 그는 오늘의 사회를 가리켜 다음과 같은 말도 했다. “울리지 않는 전화기 앞에서, 활짝 열린 냉장고 앞에서, 노인들이 죽어가는 것이 오늘의 사회다.”
울리지 않는 전화는 고독이면서 공포일 수밖에 없다. 활짝 열린 냉장고는 허무 그 자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프랑스 노인들만 그럴까.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닐지 모른다. 먹통이된 전화기 앞에서, 이미 제구실을 포기한 냉장고 앞에서 인생을 원망하는 노인들이 없다고 누가 단정하겠는가.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에는 자크 아탈리와 같은 문명비평가가 없다는 사실이다. 아니 있는데도 침묵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침묵하는 지성은 쓸모가 없다. 더도 덜도 말고, 소외된 노인들의 처지를 함께 아파하는 정치인과 행정가가 한 둘쯤 있었으면 하지만 이것도 우리에게는 사치인가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