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탄집
/이진명
불탄 집 아름답다
형체도 내용도 가진 것 없다
이름도 없다
나는 그 집을 신이 불태웠다 생각한다
재 위에 신글씨인 듯싶은
알지 못할 형상문자들 얼크러져 있다
신은 그 집을 쳤다
그 집에는 원래 신 자신이 거하였으나
사람들의 이마 놋쇠와도 같이 솟구쳐
소리만 울리고
신을 찾는 어떤 연약한 것들도 깃들지 못했다
처음에 집은 완전하였으나
결국 집은 완전하지 못했다
신은 우리의 마음을 찢어 거기에 불을 붙였다
집이 불타면 먹지 못하고
집이 불타면 눕지 못하고
집이 불타면 날지 못하고
집이 불타면 가리지 못하리
그러나 놋쇠와도 같이 거만한 집이 불타면
그 불탄 집 아름답다
형체도 내용도 가진 것 없다
이름도 없다
이미 신이 다시 내려 거하기 시작한 집
시인이 산책하면서 만나는 어떤 불탄집의 전경을 그려냈다. 햇살을 느끼는 분위기도 그러하거니와 두려움과 쓸쓸함, 미세한 어떤 극점에서 무엇인가 생성되는 것을 피부로 느끼는 전위 같은 것이다. 불탄집이 장기적으로 방치된 삶의 연관성을 포착하면서 시인은 몸으로 바꿔 노래하고 있다. 우리들이 속세가 어디론가 다다른 한계점에서 새로운 이상을 발견하고 잔해들 속에 남겨진 뼈아픈 상처를 위로할 수 있을 때 생의 도구들과 결별하는 순간을 준비하게 된다. 불타는 집을 다른 경전으로 보면 인간의 욕망이 더 없음을 안다. /박병두 수원문인협회장·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