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비
/조용미
오래된 쇠못의 붉은 옷이 얼룩진다
시든 꽃대의 목덜미에 생채기를 내며
긴 손톱이 지나가는 자국
아픈 몸마다 팅팅 내리꽂히는
녹슨 쇠못들
떨어지는 소리
하얀 마당에 푹 푹 단내를 내며
쏟아지는 녹물들
붉은 빗금을 그으며 머리 위로 떨어지는
닭벼슬! 맨드라미! 백일홍! 해당화! 엉겅퀴! 큰바늘꽃붉은잎!
신음소리를 내며 막 벌어지는
상처의 입들,
눈동자를 붉게 물들이며
나쁜 피를 다 쏟아내는 저녁
- 조용미 시집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에서
가을로 접어드는 길목, 경기도청 뒷길 단독주택 화단에 봉숭아, 백일홍 맨드라미 지천으로 피었다. 그 위로 한줄기 장대비가 요란스럽게 소리를 내며 쏟아지고 있다. 후드득 떨어지는 장대비에 붉은 꽃송이가 잘게 부서지며 도랑물을 붉게 물들이며 흘러간다.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꽃대들, 커다란 상처를 품에 안고 삶의 반전을 위하여 하늘 쳐다보며 기도한다. 갑자기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지고 가슴이 후련해진다. 수직으로 내리 꽂는 빗줄기를 따라 내 몸 안의 나쁜 피들이 방전되고 내일을 위해 새로운 비가 생성되는 저녁이다. /정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