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과 아파트
/고형렬
하늘은 온통 아파트 불빛이다
삼각형 코를 가진 이방인 가족 아파트는 없다
여자와 아이들 빨래가 흔들리는
바람 그네 / 햇살 발자국도 옮긴 적이 없는 발코니
바람도 서로 열지 못하는 문만 굳게 잠겨 있다
풀의 하늘엔 이슬이 내려와 별처럼 산다
그야말로 / 아파트를 바라보면 긴 시간은 산산조각 깨어진다
그 집의 여자는
우울한 얼음구름이 불어오는 싸우스코리아
북위 37도쯤 수도권 어딘가 살고 있을 것
베짱이와 사마귀가 세 들어 사는 아파트는
파란 하늘 속을 산과 함께 자전하며 돌아온다
간혹 손을 뻗어 구름을 뜯어 먹으며
아파트 옥상엔 풀들이 바람과 살고 있다
- 고형렬 시집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거울이다’에서
풀과 아파트는 우리 생활 속에서 접할 수 있는 흔한 풍경이다. 그러나 화자는 ‘바람도 서로 열지 못하는 문만 굳게 잠겨 있다’ 라며 이웃 간 소통의 부재에서 일어나는 갈등적 요소와 냉소적 사회를 원망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 사회의 어딘가는 삭막한 도심의 철벽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슬이 내려와서 별과 함께 사는 동화적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 하는 시간적 여유를 줌으로써 어지러운 사회를 떠나 치유할 수 있는 희망의 새 빛을 노래하고 있다. 손을 뻗어 구름을 뜯어 먹으며 아파트 옥상엔 풀들이 바람과 함께 더불어 살고 있는 여유롭고 아름다운 세상이 눈 속에서 아른거린다. /정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