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18 (금)

  • 흐림동두천 23.0℃
  • 흐림강릉 20.8℃
  • 서울 27.9℃
  • 구름많음대전 28.0℃
  • 흐림대구 27.6℃
  • 구름많음울산 25.5℃
  • 구름조금광주 28.6℃
  • 구름조금부산 28.2℃
  • 구름조금고창 28.4℃
  • 구름많음제주 29.8℃
  • 흐림강화 26.6℃
  • 구름많음보은 23.2℃
  • 구름많음금산 27.2℃
  • 구름많음강진군 29.6℃
  • 구름많음경주시 26.8℃
  • 맑음거제 28.6℃
기상청 제공
조선시대의 반인권적 제도 가운데 하나가 사(士)·농(農)·공(工)·상(商)으로 분류한 사민제도(四民制度)였다.
이 제도는 봉건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차별사관의 산물인데 이 제도가 고약했던 것은 한번 정해진 신분은 일생 동안 바뀌지 않은 점이다. 소위 세도가 집안의 자식들은 과거에 급제만 하면 한평생 거들먹 거리며 살 수 있었으나 상민의 자식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다.
어쨋거나 이 계급에 속하는 인간들을 양반 또는 사대부(士大夫)라고 했는데 본시는 중국에서 비롯된 것을 우리나라가 본 딴 것이다.
사대부란 어원은 중국 고대 사회의 신분층인 천자(天子), 제후(諸侯), 대부(大夫), 사(士), 서민(庶民)의 5계급 가운데 ‘사’와 ‘대부’를 합친 것이다. 천자와 제후는 황제와 왕이며 사와 대부는 그 밑에 있는 서민을 지배했다. 고대 봉건사회가 무너진 후에도 이 제도와 관행은 계속 남아, 관료 또는 지배층이란 뜻으로 쓰였다.
한나라 때 이후로 관직이 세습되면서 사족(士族)이라 불린 지배계층이 귀족화되어 육조(六朝)시대에는 문벌귀족이 사회지배층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송나라 때부터는 세습귀족 대신 과거(科擧) 중심의 관료계급이 형성되었다. 이들은 농·공·상에 종사하지 않는 독서인, 지식층이며 하급 관리가 아닌 과거 출신의 문인관료를 뜻하였다.
따라서 중국문화는 사대부 문화로 불리우며 사대부는 지식과 학문을 독점하고 여론을 주도하였다.
오늘날 사민제도는 물론 문벌귀족도 없어졌다. 양반과 상민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무형의 계층과 차별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지방 출신 학생을 우대 입학시킨다니까 서울 출신 학생이 반대하고 있다. 살아남기 위한 경쟁이라고는 하지만 왠지 입맛이 개운치 않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