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된 날
/백이운
목련이 피었나 했더니
어느 새 져버리고
천둥 번개 치나 싶더니
개들이 사라졌다
기적을 행하시느라
허리 휘인 그분도.
- 시조집 ‘어찌됐든 파라다이스’ / 동방시선·2015
살면서 봄이 가고 여름이 간 것은 알겠는데 ‘개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개는 십이간지의 상징성을 보면 한해 수호신이라 들었습니다. 어째 수호신의 실종은 의지할 곳 없는 막막한 느낌입니다. 영락없는 가을 지나 겨울초입의 을씨년스런 풍경입니다. 이 적막함을 두고 시인은 ‘복되다’ 말하고 있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급기야는 기적을 행하는 절대자조차 늙어 사라졌는다는데 삶은 너무 고독한 나날이지 않나요? 그래도 복된가요? 문득 김종삼의 시 한 구절이 겹치는군요.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어부’에서)” 속삭였던 구절입니다. 우리에게 적막과 고독만 남았어도 우리가 살아온 기적이 있었군요!
/이민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