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청빈
/장순금
하느님이 지상에 흰 물감통을
확! 엎질렀다
하느님의 실수가
지상의 얼굴을 환하게 하였다
살아있는 것들 모두가 한순간에 같이 웃었다
산과 바다가 수평으로 나란히 키가 같아져
하늘과 땅이 경계를 지운 한 식구가 되었다
하얀 손수건 한 장이 지구의 눈 코 입을 덮었다
지상에 흰 물감이 증발한 후
구름과 바다와 산이 고요히 제 집으로 돌아갔다
나도 하얀 손바닥을 털며 집으로 돌아오니
곳곳에 얼룩진 것들이 더 크게 보이고
나는 더 작아졌다
그래선가 마당에 선 눈나무가
제 몸에 묻은 남루를 자꾸 내게도 묻혀주었다
참으로 고마우셔라!
하느님의 아름다운 청빈
-장순금 시집 ‘골방은 하늘과 가깝다’
얼룩진 것들이 많다. 작게는 음식물이 떨어진 자국에서 크게는 사람들의 온갖 비리까지, 세상은 우리가 그린 무늬들로 오염되어 있다. 우리는 간혹 이런 욕심 앞에서 분노를 느낀다. 조금만 내려놓으면 될 것을, 하지만 그러한 것을 알면서도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다. 우리의 비천한 의식이다. 하느님은 이러한 지상을 향해 흰 물감통을 확! 엎지른다. 보다 못해 그 하얀 손수건 한 장으로 온 세상을 덮어버린다. 경계가 뚜렷했던 산과 바다와 하늘과 땅을 나란히 키가 같게 하고 지상의 모든 얼굴을 환하게 웃게 한다. 시인은 짐짓 그것을 하느님의 실수라 한다. 우리 모두를 동심의 세계로 돌려보내고 세상 곳곳의 얼룩을 자각하게 하는 눈, 그렇다면 올겨울 하느님이 실수를 많이 하면 좋겠다. 참으로 고마우신 하느님의 청빈으로 꽉 차는 그런 계절이면 좋겠다.
/서정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