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辭表)
/나희덕
날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속에서
창밖으로 타오르는 노을을 보며
하늘에 대고 몇 장이나 사표를 썼다.
갓난아기를 남의 손에 맡겨두고 나와
남의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심정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눈망울을 뒤로하고
내가 밝히려고 찾아가는 그곳은
어느 어둠의 한 자락일까.
이 어둡고 할 일 많은 곳에서
사표(辭表)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내가
이렇게 사표(辭表)를 쓰게 된다면
그 붉은 노을을 언제 고개들고 다시 볼 것인가.
하늘에 대고 마음에 대고 쓴
수많은 사표들이 지금 눈발되어 날리는데
아기의 울음소리가 눈길을 밟고 따라와
교실문을 가로막는데
나는 차마 종이에 옮겨적을 수가 없다
붉게 퇴진하는 태양처럼
장렬한 사표 한 장 쓸 수는 없을까.
긴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 밝은 터널이 기다린다. 그 긴 털을 다시 마주하면 어둔 터널은 먹먹한 사연들로 막힌다. 길이 끝났을 뿐인데 다른 길을 만들기 위해 가면서 숨가쁘게 시간이 달려가던 일들이 이 시를 보면서 일어난다. 사색에 잠길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도 행복하고 정형화된 사각구조에서 오는 이름도 낯설다. 모든 사념들이 자락들을 끊어놓고 달아나는 번뇌와 같은 여정을 만나지 않을 수 없다. 창밖으로 매일 만나는 고단한 물결들을 다시 마주할 수 없는 일들이란 것을 영영 이별을 할 때 생각은 좁아지고 마침표를 마감하고 길을 다시 열어야 한다. 길은 삶을 정리하는 시간이고 혼자일 수밖에 없는 행복도 불행도 주는 시간이다. 고민하는 연기소리 하늘로 오른다. 그 연기는 다시 분명, 희망이어야 한다. /박병두 소설가·수원문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