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28 (목)

  • 구름많음동두천 29.3℃
  • 맑음강릉 33.1℃
  • 구름많음서울 29.7℃
  • 구름조금대전 30.6℃
  • 구름조금대구 30.8℃
  • 맑음울산 31.3℃
  • 구름조금광주 30.5℃
  • 맑음부산 31.2℃
  • 맑음고창 31.0℃
  • 맑음제주 31.5℃
  • 구름많음강화 28.8℃
  • 구름조금보은 27.9℃
  • 맑음금산 29.4℃
  • 구름조금강진군 30.8℃
  • 맑음경주시 31.7℃
  • 구름조금거제 30.6℃
기상청 제공

[아침시산책]우리다, 그녀

우리다, 그녀

/이희원

나는 한 고서를 만났다.



한 장 한 장 해체해 보려 했으나

곰팡이와 한몸이 된 듯 틈을 주지 않았다.



문자와 문자, 방점과 방점이 널브러진 무덤,

입구를 찾았으나 갈색 문은 열리지 않았다.



세상이 새로 열리던 한때,

한 여자의 붉은 입술과 푸른 눈물을 우려낸 적이 있었다.



뚝뚝 잘라낸 고서뭉치 위에 끓는 물을 부었다

순간, 차마고도의 방울 소리 뒤로 라마경이 흘러나왔다



우린 물에 야크치즈를 섞어 먹는데

침묵의 밑바닥에서 솟아오르는 또 다른 침묵,

내 가난한 언어로는 해독되지 않던 물비린내,



그녀의 환생을 만났다.

보이차가 익던 윈난성의 푸른 산하를 만났다.



- 이희원 시집 ‘코끼리 무덤’

 

 

 

사람을 알기란 쉽지 않다. 문을 열어주지 않는 한 한 발짝 다가가기도 어렵다. 화자는 한 권의 고서를 만났다. 한 장 한 장 해체해 읽어보려 한다. 그러나 문자와 문자, 방점과 방점이 널브러진 무덤 같은 겉모습만 보여줄 뿐, 정작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틈을 내주지 않는다. 그래서 화자는 한 여자의 붉은 입술과 푸른 눈물을 우려내며 세상이 새로 열리던 지난날의 한때처럼 끓는 물을 붓는다. 그러나 그러한 역정에도 차마고도의 방울 소리 뒤로 라마경만 흘러나올 뿐, 침묵의 밑바닥에서 솟아오르는 또 다른 침묵을 본다. 완고하게 닫힌 문이 더욱 닫히는 침묵의 그 소란한 소리, 화자는 내 가난한 언어로는 해독되지 않던 물비린내라 자신을 위로한다. 하지만 노력은 언제나 헛되지 않다, 보이차가 익던 윈난성의 푸른 산하를 만나고 멀기만 했던 그녀의 세계도 찻물 우러나듯 서서히 열리는 것이다.

/서정임 시인

 







배너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