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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나도 봄

 

몇 번의 벨이 울리고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

“우리 봄 캐러 가요.”

“벌써 쑥을 캔다고?”

“무슨 말씀이세요? 이쯤 되면 봄이 아롱거려서 참을 수가 없을 텐데요.”

유난히 계절 타는 나를 너무나 잘 아는 정애씨의 다그침에 부스스 일어나 내다본 3월의 문밖 세상은 이미 봄으로 뒤엉키고 있었다.

봄은 봄이라는 그 단어만으로도 참, 따스하다. 그 느낌만으로도 물 흐른다. 언 땅이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리면 그 기회 놓치지 않고 봄기운 속으로 은근슬쩍 들여놓는 식물들의 뿌리. 그 움직임 놓치지 않고 숱한 본능들 함께 꿈틀거리기 시작하면 비로소 대지의 축제는 시작되는 것이다. 겨울 동안의 헐벗은 대지. 그 캄캄한 고독의 시간을 온전히 잊어버리게 하는, 다시 한 번 그 캄캄한 고독의 시간을 버텨낼 힘을 갖게 해주는 그런 봄의 축제 말이다.

해마다 찾아와 주는 봄, 그 축제의 색다름을 올해도 여전히 놓칠 수가 없어 우리는 논두렁에 한참을 쭈그리고 앉아 쑥을 캐기로 했다. 두런두런 옛이야기 섞어가며 봄 햇살에 등허리를 맡긴 그 시간이야말로 꾸밈없는 어린 나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마치 들판을 뒹구는 강아지처럼 진달래 쌉싸래한 꽃송이를 따먹다 지치면 가지가지 꺾어다 학교 교탁위에 꽂아놓았던 때 묻지 않은 그 순수한 이야기부터, 개나리 뾰족한 꽃 입술 예쁘다고 때 이른 꺾꽂이 한다며 개나리울타리 모두 망가트려 할머니께 쫓겨난 일, 양지쪽 화단에 죽-하니 서서 코 묻은 소매부리로 해바라기 하던 초등학교 어린 날의 가슴 아리고도 기이한 장면까지. 주거니 받거니 몇 차례 봄 추억 늘어놓다보니 어느새 쑥이랑 냉이가 바구니 가득 차올랐다. 질펀한 두 여인네의 넋두리가 축제의 추임새로 충분하였던지 들판의 바람이 한결 더 생기가 있는 듯 보였다.

준비 없는 축제는 먹을 것이 없다고 했다. 심심하다 못해 허전하고 마침내 초라해진다. 마치 사람의 삶처럼 말이다. 오래 전 어느 날, 봄은 왔다지만 온 봄이 아닌 듯 제법 서늘한 그 아침, 허술한 화단 양지 쪽 돌 틈에서 자라목처럼 움츠리고 꽃대 올린 민들레 노란 꽃을 본 적이 있다. 살면서 문득문득 떠오르는 그 이미지를 나는 한 번도 홀대한 적 없다. 흙속 냉기가 꽃잎에 닿을까봐 바닥에 처연히 풀어놓은 보랏빛 잎사귀. 봄을 준비하기 위해, 살기 위해, 그 꽃 피우기 위해 파르르 떨면서도 버티고 있는 그 대견함을 함께 보았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그 민들레는 봄을 기대하며 끊임없이 버텨내야하는 내 고독의 벗이 될 때가 참, 많았다.

겨울과도 같은 고독의 끝에 맞이하게 되는, 또 한 번 용기를 갖게 하는 내 삶의 봄.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외롭고도 쓸쓸한 인내의 터널을 무사히 건널 수 있는 힘 또한 그 봄에 대한 기대 때문일 것이다. 한 아름 봄 담아 돌아오는 길, 애쑥에 밀가루 오소소 뿌리고 된장 한 숟가락 버무려 보글보글 끓여내는 아침상을 생각했다. 연둣빛 그대로 보듬은 봄 향기 쑥전, 하얀 뿌리 고슬고슬하게 뒤엉킨 참기름 반지르르한 냉이무침도 올려야겠다. 자연이 화사하게 펼쳐 놓을 그 봄과 더불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사람의 봄, 겨울과도 같은 삶의 터널 무사히 이겨내고 비로소 내가 주인공이 될 나의 제대로 된 봄 축제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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