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29 (금)

  • 구름많음동두천 29.3℃
  • 맑음강릉 33.1℃
  • 구름많음서울 29.7℃
  • 구름조금대전 30.6℃
  • 구름조금대구 30.8℃
  • 맑음울산 31.3℃
  • 구름조금광주 30.5℃
  • 맑음부산 31.2℃
  • 맑음고창 31.0℃
  • 맑음제주 31.5℃
  • 구름많음강화 28.8℃
  • 구름조금보은 27.9℃
  • 맑음금산 29.4℃
  • 구름조금강진군 30.8℃
  • 맑음경주시 31.7℃
  • 구름조금거제 30.6℃
기상청 제공

[생활에세이]도련님과 종놈

 

봄이 오면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만 같아 햇살이 밝아도 바람결이 조금만 부드러워도 설렌다. 냉이도 나오고 버들강아지도 은빛 실눈을 뜨더니 뒤쫓아 개나리가 노란 입술을 내민다. 그렇지만 봄이라고 좋은 일만 있을까. 그 못지않게 성가시게 하는 일도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전화벨도 그렇게 저장 공간이 부족한 탓에 쏟아지는 문자를 지우면서 저절로 짜증부터 난다. 국회의원 후보 캠프에서 보내는 문자와 어느새 줄을 섰는지 지지를 부탁하는 내용도 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요동을 치면서 이합집산을 하는 모습은 스스로 표현하기로 시정잡배만도 못한 추태를 서슴없이 보이고 있다. 한동안 또 얼마나 보기 싫은 꼴을 보아야 할지. 이 봄에 보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은데 이런 건 사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럴 일만은 아니지 하는 마음도 있다.

뉴스를 보면 언제나 정치권 이야기로 시끄럽다. 위정자들은 국민들을 실망시키기에 주저함이 없고 국민들은 그들에게 실망을 넘어 염증을 느끼는 지경에 이르렀다. 누구도 공약을 실천하거나 국민의 편에 서서 정치 활동을 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위정자들은 국민들로부터 권한을 위임받고 그 위임받은 권력을 기반으로 국민과 국가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지를 다는 순간 망각하도록 프로그래밍이 된 조직처럼 보인다.

부잣집 도련님이 일본 유학을 가겠다고 했다. 부모 마음에 자식을 멀리 보낸다는 일이 내키지 않았으나 아들의 앞날을 위해 허락했다. 머나먼 타국에서 공부를 하려면 학비를 넉넉히 지원해도 힘든 일이 한두 가지도 아닐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외롭기도 하겠고 사소한 심부름이나 말동무도 할 겸 아들 걱정을 하던 부모들은 서당에서 글을 읽던 학동시절부터 데리고 다니던 몸종을 딸려 보냈다. 그러나 아들의 생각은 처음부터 다른 곳에 있었다. 공부에 취미가 없던 아들은 부모의 관심과 기대가 부담스러웠다. 어떻게든 부모의 눈을 피해 떠나고 싶던 차에 유학을 생각했다. 일본에 도착하면서 학업보다는 잡기에 눈을 돌렸다. 그것도 슬슬 싫증이 나자 드디어 기생집에 둥지를 틀었다. 물론 학교는 몸종에게 대신 출석을 하도록 했다. 고국에서는 항상 넉넉한 돈을 보내왔다. 아들은 그 돈으로 놀아나고 몸종은 열심히 공부를 했다. 사실 몸종은 출신이 종이었을 뿐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다. 머리도 좋아 글방에서도 어깨너머로 글을 익혔고 태생적으로 성실했다. 학교에서도 열성적으로 공부를 해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과 함께 학위를 받게 되었다. 기다리던 아들이 귀국한다는 소식에 늙은 부모와 근동 사람들이 모두 마을 어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말을 타고 오는 일행이 보였다. 그런데 그들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고개를 갸웃거리고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당도한 일행의 모습에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고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상황에 부모들은 몸을 가누지 못했다. 위풍당당하게 말을 타고 오는 사람은 도련님이 아닌 종놈이었고 초라한 행색으로 말고삐를 잡고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걸어오는 사람이 다름 아닌 도련님이었다.

얼마 남지 않는 선거에서 지금까지 보여준 실망과 추태는 다 덮는다 하더라도 일껏 국민들의 지지와 성원을 받은 후보들이 도련님의 귀향을 닮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배너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