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의 실개천엔 저녁해가 빠지고
/허수경
상처의 실개천엔 저녁 해가 빠지고 바람같이 장난같이 시시덕거리며 세월도 빠졌습니다
산들은 활처럼 둥글게 사라져버리고 이 실개천 꽃 다홍 주름이 어둠을 다림질하며
저만치 저만치 가버릴 때 바닥에서 스며드는 먹물, 저녁 해는 물에 빠져나오지 않고
동생들이 누이를 가엾어 하는 상처의 실개천엔
누이들이 지는 해처럼 빠지는
내 상처의 실개천엔
세월도 물에 빠져나오지 않고
- 허수경시집 ‘혼자 가는 먼 집’ / 문학과지성사
큰물도 아닙니다. 개울물도 아닙니다. 졸졸 흐르는 실개천이랍니다. 실, 가느다란 목숨이라는 말씀이십니다. 우리는 어느 실개천에 목매어 살고 있을까요. 아니면 살아가려 몸부림 치고 있을까요. 우리들의 누이들 동생들 그 수많은 상처의 실개천을 우리는 잊고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애써 잊으려 돌아서는 길가에 바닥에서 스며드는 먹물, 우리들 작은 상처의 실개천은 아직도 피 흐르며. /조길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