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르르, 박수 소리 들리고 예순을 바라보는 교수님, 활짝 웃으신다. 케이크를 앞에 두고 여러 개 촛불 일렁이는 모습을 보다말고.
“이거 울음이지요? 나 태어나던 날도 그렇게 우렁차게 울었다는데. 그 날 기억하고 이 촛불도 제대로 한 번 울어주는 게지요.”
그러고 보니 양초 제 몸 태우며 우는 모습이 마치 어머니 살을 찢고 세상 밖으로 나온 그 날부터 시작된 우리네 삶과도 닮은 듯하다. 제 살 깎으며 매일 매일을 살아가는 아픔의 시작과도 같은 그날을 우리는 생일이라 부른다. 그리고 축복이라 말한다.
그날은 꼭 고봉밥을 담으셨던 어머니. 찹쌀을 듬뿍 넣은 차진 밥, 동글동글한 수수팥단지 한 접시, 뜨끈뜨끈한 미역국 한 대접, 내가 좋아하는 갈치조림이 올려 진 생일상. 6남매 틈에서 아옹다옹 살아냈던 어린 내가 주인공이 되는 날은 유일하게 그 생일 날 뿐이었으니 하루 종일 신이 났던 기억이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생일상은 지난 1년을 잘 견뎌낸 것에 대한 격려와 또 1년을 건강하게 살 길 바라는 마음에서 주는 어머니의 가장 큰 선물이 아니었나 싶다. 수십 년이 지나도 어제처럼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그런 선물 말이다.
숱한 사람들이 으앙! 하며 울음으로 시작하는 삶. 그 삶이 녹록치 않다는 걸 미리부터 알고 있었던 부모님의 선물 릴레이. 그 끊임없는 선물의 연속으로 사람들은 또 살아왔을 것이다. 어린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대문 앞에 쳐 놓았던 금줄 또한 위험으로부터 너를 지켜주겠다는 약속의 징표 같은 당당한 처음 사랑의 선물인 셈. 삼칠일마다 미역국과 밥을 올리고 삼신할머니께 정성껏 드리는 기도, 백일지나 백설기 올리고 가족들 둘러앉아 자축하는 축복, 첫 일 년 되는 날 온 동네 떡을 돌리며 친지들까지 모두 함께 벌이는 잔치. 그 모든 것들이 다 가족 공동체가 함께 나누는 서로에 대한 선물이 아니었나 싶다.
“교수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와글와글 건네는 축하메시지에 잠시 눈빛이 흔들리나 싶던 교수님 하시는 말씀, “언제부턴가 나는 생일 축하를 받으면 자꾸 눈물이 나요. 이렇게 좋은 오늘을 선물해주신 제 어머니가 더 이상 제 곁에 안 계시거든요. 그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선물은 그 자체만으로도 축복이라 했든가. ‘하늘아래 내가 받은 가장 커다란 선물은 오늘입니다.’ 라는 내용이 담긴 나태주 시인의 시를 읽은 적이 있다. 오늘 교수님 생일 파티를 하다말고 나를 보고 있다. 오늘이라는 이 커다란 선물을 부모님으로부터 받아 놓고 나는 또 얼마나 감사할 줄 알았나를 생각해 보았다. 이 오늘로 하여 나는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을 덤으로 얻기도 하며 살아왔었나. 또 얼마나 많은 오늘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가. 내가 까맣게 잊고 지낸 오늘이라는 이 소중한 선물. 그 숱한 오늘이었을 내 생일날에 저 양초처럼 녹아내리며 나를 키웠을 어머니를 생각하고 전화라도 드린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싶다. 그 숱한 오늘을 내 어머니는 얼마나 많은 저 뜨거운 촛농 같은 눈물을 흘리셨을까 생각하다 한참을 먹먹하게 서 있었다.
▲‘시와사상’ 등단 ▲한국 에세이 작가연대 회원 ▲한국본격수필가협회 회원 ▲평택문협 회원 ▲독서토론논술 문화원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