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궐(창덕궁과 창경궁)은 이궁(離宮)으로 시작하였지만 제왕들은 경복궁보다 이곳을 더 좋아하고 더 많이 머물렀다. 그리고 현대인들도 여러 궁궐 중 창덕궁을 제일 좋아하고 창덕궁에서도 후원을 가장 손꼽고 있다.
창덕궁 후원은 크기는 약 55만㎡로 매우 크며 지금은 13개 정자가 곳곳에 홀로 또는 무리를 지어 건축되어 있다. 옛날 정자가 많을 때는 지금의 2배 이상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렇게 정자가 많은 이유는 국왕들은 통치기간에 자신만의 정자를 후원에 짓고자 하였기 때문이고 그 가운데 정조는 후원을 사랑하고 가장 많은 건축을 한 국왕이다.
창덕궁 후원은 상림원, 내원, 서원, 북원, 금원등 시기에 따라 여러 이름이 있었는데 정조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상림원(上林苑)으로 불렸다. 상림원이란 본래 고대 중국에서 황실정원의 명칭이었던 것으로 태조 이성계가 동산색(東山色, 정원과 과실수 등의 재배 관리를 맡아보던 관청)을 상림원으로 개칭하였고 세조시기에는 이를 장원서(掌苑署)로 다시 개칭하였다.
정조가 창덕궁의 후원에서 아름다운 열 곳을 선정하여 시를 지었는데 이를 상림십경(上林十景)이라 하며 이 시(詩)는 홍재전서와 동국여지비고에 실려 있다. 그리고 이 시를 지었을 때가 영조43년(1767년)이라고 알려졌는데 이가 맞는다면 그의 나이가 16세인데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홍재전서에는 많은 시들이 실려 있는데 ‘상림십경’의 바로 앞, 뒤쪽에는 청의정(淸?亭), 소요정(逍遙亭), 취한정(翠寒亭), 애련정(愛蓮亭) 등의 제목을 가진 시가 있고 소요정은 ‘상림십경’에도 실려 있어 중복되고 있다.
소요정이 옥류천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치가 있지만 가장 아름답다고는 할 수는 없을 정도로 이곳에는 곳곳에 빼어난 전경과 정자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이 많다.
상림십경의 선정은 정조의 주관적 판단으로 당시 주변 환경과 시간적 요소도 많이 작용했으리라 본다. 또 별도 제목을 달아 노래한 것은 상림십경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이에 못지않게 뛰어난 곳이라 여겼기 때문이라고 본다.
정조가 십경으로 선정한 곳이 어떤 곳인지를 정조의 시와 다른 자료 등을 통하여 알아보고자 하며 아울러 정조의 생각도 읽어보고자 한다. 다음의 10곳이 영광의 장소이며 봄을 노래한 곳이 1경에서 4경까지 4곳이며, 여름은 6경 희우정만 있었고, 나머지는 가을을 노래하였다. 단, 겨울 풍경을 찬미한 곳이 없는 것이 아쉬움을 준다.
그리고 주로 낮의 풍경이 묘사되었고 밤의 풍경은 7경인 청심정에서만 나타나고 있다.
▲1경: 광풍각(觀豊閣)- 관풍 춘경(觀豊春耕) ▲2경: 망춘정(望春亭)- 망춘 문앵(望春聞鶯) ▲3경: 천향각(天香閣)- 천향 춘만(天香春晩) ▲4경: 어수당(魚水堂)- 어수 범주(魚水泛舟) ▲5경: 소요정(逍遙亭)- 소요 유상(逍遙流觴) ▲6경: 희우정(喜雨亭)- 희우 상련(喜雨賞蓮) ▲7경: 청심정(淸心亭)- 청심 제월(淸心霽月) ▲8경: 관덕정(觀德亭)- 관덕 풍림(觀德楓林) ▲9경: 영화당(暎花堂)- 영화 시사(暎花試士) ▲10경: 능허정(凌虛亭)- 능허 모설(凌虛暮雪)
창덕궁의 후원은 일제강점기에 훼손과 변형이 많이 되었지만 오랜 기간 정비를 하지 못하다가 1980년대에 들어 창경원 폐지를 시작으로 동궐의 여러 곳을 연구와 고증을 통하여 복원하여 왔으나 아직 많은 부분이 미복원으로 남아있고, 또 복원된 곳도 완벽하게 것이 아니기에 현재의 모습에서 ‘상림십경’을 다 읽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음 편에는 정조가 1경으로 뽑은 광풍각을 시작으로 십경을 하나씩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