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引力)
/정찬교
땅심은 사과를 떨구고,
수유리는 나를 잡아당긴다.
그래서 수유리에 가면
흰 머리카락마저 몇 올 남지도 않은 주제에
소년처럼 자꾸만 장난칠 궁리를 하는 것이다.
어느 날
세일극장 있던 자리를 넋 빼고 바라보다가
‘야잇- 염병할- 돼질래-’
봉고차를 몰던 사내가 노려보아도
그냥 그 자리에 꼼짝도 않고 서 있었던 것은
달빛이 파도를 끌어당기듯
수유리가 날 잡아 당겼기 때문이다.
- 정찬교 시집 ‘수유리’
많은 사람들이 퇴직 후 안정된 노후를 생각하며 도시를 떠나 귀촌을 꿈꾼다. 충주에서 교직생활을 하는 시인은, 몇 년 남지 않은 정년 후에는 고향 수유리 가까이에 터를 잡을 생각이란다. 수유리가 그를 잡아당긴다. 4·19탑 백운대 번동 야산 행운문구점 추억은 나란히 놓인 왕자파스의 색감처럼 아득하다. 럭키제과점은 없지만 그는 빵 냄새를 따라 골목을 떠돈다. 수유리 최후의 날에 무너진 세일극장을 차지한 술집 엠파이어는 불야성이다. 종이 모자를 만들어 쓰고 골목을 달음박질하던 그날의 왕자들은 이제 노쇠한 노병일 뿐이다. 소주 한 잔 걸친 서울의 달이 수유리의 야경을 내려다본다.
/김명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