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논개 바위-
/천융희
저 홀로
모로 누운 당신의 침묵은
적멸의 길에 던져진 한 권의 책이다
여백 가득한 어록들
바람에 제 몸을 적신 유등이
수면 아래 직방, 흘림체로 필사한다
더 이상 각주는 달지 않는다
다만, 허공의 낱장마다
댓글처럼 번져가는 정신(精神)
사물에게 정신을 불어넣는 일은 쉽지 않다. 사물에다가 생명을 불어넣고 의미를 붙인다는 것도 쉽지 않다. 우연히 사물과 만남으로 사물이 던져주는 직감으로 시를 쓰기도 한다. 직관에 의한 직감으로 시에 이르기도 한다. 시를 사물에서 길어올리는 작업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므로 그러한 작업 과정으로 태어난 시이므로 아름답고 귀할 수밖에 없다. 논개바위를 책으로 하여 책은 모든 정신의, 그리움의, 사랑의, 역사의, 꿈의 집산체이므로 책은 눈앞의 책에서 바람의 책으로, 꽃의 책으로, 허공의 책으로, 하늘의 책으로, 우주의 책으로, 우주의 의미로 확장되어 나간다. 그것이 시인의 정신이자 논개의 정신이고 세상의 정신이자 우주의 정신이다. 논개바위란 책을 읽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고 강물이고 이슬이고 새소리고 세월이고 봄이다. 바위에서 책으로 우주로 풀어가는 시인의 알뜰한 손길이 느껴지는 시다. 먼 남쪽에서 시인으로 단아하게 앉아 시를 쓰는 시인의 자세가 존경스럽다. 좋은 시로 늘 감동을 던져주어서 고맙다. /김왕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