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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내 삶의 단비

 

비가 온다. 며칠간 유난히 덥더니 어제부터 내리는 비가 태풍급의 저기압 영향이라 그런지 제법 많은 양이다. 이번 비로 밭작물 해갈은 물론 모내기를 앞둔 논에 물 가두기에도 많은 도움이 될듯하다. 늦은 감이 있기는 하지만 엊그제 심은 나무에게도 생명수임에 틀림이 없다.

지난 화요일 같이 일하는 친구와 방일리 집 뒷산으로 두릅을 따러갔다. 10여 년 전 태풍으로 잣나무들이 쓰려져 베어낸 자리에 두릅나무와 엄나무를 몇 그루 심었더니 생각보다 많이 퍼져서 두릅 농사를 지은 것처럼 풍성해 봄이면 귀하다는 두릅을 주변 사람들과 나눔까지 하면서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두릅 보다 엄나무 순이 좋은 것 이라면서 큰 가시에 연실 찔려 가면서도 신나게 엄나무 순을 따던 친구가 생소한 이름의 나물 이야기를 한다. 북나무를 보면서 이거 혹시 가죽 나물이 아니냐고 물어온다. 가죽 나물? 그게 뭔데? 그런 나물도 있어? 하니 가죽나무 순을 가죽나물이라 하는데 무척 맛있고 최고로 친단다. 봄나물 최고로 꼽는 두릅을 제치고 엄나무 순이 좋다고 하더니 가죽 나물은 또 뭐야….

궁금증을 푸는 것 또한 내 삶의 작은 행복이다. 요즘은 인터넷을 뒤져보면 뭐든지 금방 알아볼 수 있으니 참 좋은 세상이다. 사무실에 와서 찾아보았다. 가죽나무 가죽 나물을 쳐보니 사진과 함께 설명이 잘되어있고 가죽나무 묘목을 파는 곳도 있었다. 전화를 해보니 택배로 배송도 해 준단다. 2일 7일이 청평 전통 장날이라 묘목을 파는 분을 찾아가 가죽나무 묘목이 있냐고 물어 보니 없다며 이쪽 동네에서는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 말한다. 그럼 우리 동네에서도 심으면 잘 자라기는 하겠느냐 물으니 괜찮을 것 같다고 한다.

토요일 점심때쯤 길고 커다랗게 생긴 박스가 배달되었다. 주문한 가죽나무 묘목이다. 빨리 가서 심었으면 하는 마음이나 바쁜 일 때문에 그럴 수가 없어서 일요일 오전 일찍 서둘러 나섰다. 설악 창의리 밭으로 가는 길에 마침 설악 장날이라 매실 나무 스무 그루를 더 사서 도합 서른다섯 그루를 심었다. 나무를 심고 물을 충분히 주어야 하는데 손님이 오시는 바람에 물도 못주고 와서 못내 마음이 쓰여 저녁에 어둑할 때 다시 가서 물을 주었다. 일기예보에는 월요일부터 비가 온다는데, 참깨를 심어야 한다며 새벽부터 서두는 아내를 따라 밖으로 나서보니 맑기만 한 하늘이 살짝 미워진다. 참깨를 심으면서도 이번 일기 예보는 맞으려나 하는 마음으로 연달아 하늘을 쳐다보니 참깨는 땅에다 심어야지 하늘에다 심을 심산이냐, 비 오기 전에 심어야지 뭐하는 거냐고 핀잔을 준다.

오후가 되면서 하늘이 어두워지고 비가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진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저녁이 되니 부슬 부슬 내리는 비는 정말 귀엽고 예쁘게 온다.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 창밖을 먼저 내다보니 밤새 내린 비가 차분하게 내리고 있다. 이제 걱정 끝이다. 엊그제 심은 나무들도 이 비를 받아먹고 새 자리에서 뿌리 내리고 잘 자랄 것이란 확신이 선다. 아직은 보잘 것 없는 묘목이지만 잘 자라주면 몇 년 후부터는 많은 기쁨을 주리다. 삶이란 것이 별거 없는 것 같다. 행복이란 것이 이렇게 소소한 것에서 오는 것이지 대단한 것에서 오는 것만은 아닌듯하다. 이글을 쓰는데 전화가 와서 받으니 지인이 내일 뽕잎을 따러 오면 어떻겠는가 물어온다. 언젠가 우리 집에 와서 뽕잎 장아찌를 맛보고는 뽕잎 딸 때 쯤 꼭 연락을 해달라더니 먼저 연락을 해온다. 아직껏 내리고 있는 단비처럼 내일 오는 손님도 내 삶의 단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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