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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두의 시선]어버이날, 어머니의 추억(追憶)

 

 

 

산 속은 고요했다. 적막했다. 풀 내음을 안은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왔다. 어디선가 산새가 울었다. 가느다란 소리였지만 힘이 있는 울음소리였다. 그것은 고요 속에 적막을 찌르는 듯한 짧은 음악소리였다. 묘지는 그런 가운데서 안온했다. 평화로웠다. 평소에 어머니 곁에 있을 때 느꼈던 따뜻한 온기를 묘지는 뿜어내고 있었다. 하늘을 쳐다보니 하얀 뭉게구름이 역시 미소를 지으며 지나가는 듯 했다.

먼 서녘 하늘 아래에/ 어머니 씨앗은/ 슬픈 자의 얼굴이 되고/ 밥이 되었습니다.(박병두 첫시집, ‘오늘은 당신의 생일입니다’ 중에서)

묘지의 뒤쪽 둔덕에 잔디가 더러 없어서 흠집처럼 보기가 좋지 않았다. 가져온 잔디를 뒤쪽으로 옮겼다. 그리고 흠집 난데에 잔디를 덮기 시작했다. 한 뭉치를 덮고 모종삽으로 다지고, 또 한 덩이를 다른 곳에다 덮었다. 생전의 어머니가 간절하게 그리웠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나는 태권도 대회에 나간 선수였다. 시합 직전에 어머니는 살아있는 낙지를 주전자에서 꺼내 내 앞에다 내놓았다. 라면봉지 위에서 살아 꿈틀거리는 게 보기에도 징그러웠다. 그것을 내 입에다 집어넣으려고 했다. 나는 싫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막무가내였다. 살아서 몸을 비틀고 있는 그것을 내 입에다 강제로 우겨 넣었다. “꼭꼭 씹어라. 힘이 날거다”

나는 얼굴은 찌푸리며 할 수없이 물컹거리는 그것을 우적거리며 씹었다. 어머니가 내 팔을 부여잡고 있어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울면서 그것을 삼켰다. 다 삼키자 어머니는 쾌재를 불렀다. “됐다. 힘이 난다고 상대 아이를 너무 심하게 때리지 마라” 그리고 시합에 임했다. 정말 힘이 솟구쳤다. 나는 신이 나는 태권도 시합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그 낙지가 무슨 영양가가 있다고 그리도 펄쩍거리며 날뛰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하늘에는 조개구름이 떠가고 있었다. 어디서인가 또 다른 새가 울었다. 마치 첼로의 G선처럼 좀 둔탁한 소리를 냈지만 역시 그 소리는 음악이었다.

병은 깊어/ 주름이 되고/ 주름은 굵어져/ 허무한 자리를 남깁니다.// 내 눈에는 月出山도 보이고/ 智異山 하늘도 보입니다.

어머니는 가슴앓이를 하셨다. 가슴이 잘못됐다고 해서 인근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하였다. 처음에는 괜찮은 것 같았는데, 차츰 날자가 지나자 어머니는 괴로워하였다. 가슴이 아프다는 것과 가슴 속에서 뭔가 쇠붙이 같은 것이 돌아다닌다는 것이었다. 서울의 큰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하니 처음 수술을 한 병원으로 다시 가보라는 말을 했다. 그 밖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처음의 전남대학병원으로 가봤으나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여전히 가슴 속에서 쇠붙이 같은 것이 떠돌아다닌다는 것이었다. 가끔 의사선생들이 수술을 하다가 가위나 핀셋트를 수술 부위에다 그냥 놓고 봉합을 하는 수가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지만 그것을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찾아간 병원마다 자기들은 모를 일이라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나날이 수척해 갔고, 가슴의 통증 때문에 밤잠을 설치시면서 괴로워하였다.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다가 내가 공무원 초임발령을 받아 집을 떠나는 날이 되었다.

발령지는 경기도였으므로 집에서 천리 길이나 되었다. 어머니는 삶은 달걀을 손수건에 싸서 내 손에다 들려주었다. 그것은 따뜻했다.

그날은 어찌나 진눈깨비가 그리도 많이 내렸는지, 눈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어머니는 사립문을 부여잡고 길을 떠나는 나를 배웅하였다. 거의 쓰러질 듯이 몸을 가누지 못하였다. 내가 자꾸 뒤를 돌아보자 어이 가라고 손짓을 하였다. 그리고 나는 언덕을 넘었다. 그게 어머니와의 마지막이었다.

오/ 이제라도 다시 걸어가 봐요/ 어머니/ 당신의 병환 소식에/ 기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오, 하늘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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