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제는 미국이 창안해서 미국사회에 적합시킨 제도이기 때문에 미국 이외의 다른 나라에서 그것을 그대로 모방하기에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제도다. 우리 헌법은 거기에다 내각제적인 요소를 혼합했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임기를 5년 단임으로 해서 더욱 문제라고 아니할 수 없다.
1960년대와 70년대 남미를 비롯한 아세아 아프리카 등지의 신생국들이 미국의 대통령제를 채택하게 된 그 주된 이유는 다소간의 독재를 감수하더라도 행정부의 안정성과 능률성을 통하여 국가안전보장과 선진자본주의 국가를 이룩해 보려는 기대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치적인 현실에서는 그러한 기대와는 달리 대통령은 그 막강한 권력을 통하여 의회와 사법부까지도 지배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대통령의 단임제 역시 1970년대에 남미에서 군사독재를 종식시키기 위하여 순환적으로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룩하려는 명분하에 창안된 것인데, 한국의 경우 제5공화국헌법에서 7년 단임으로 도입한 것을 현행헌법이 다시 2년을 단축, 5년 단임으로 채택했다. 이러한 규정들은 소위 권위주의시대에 ‘평화적 정권교체의 기틀이 이루어질 때까지’라는 한시적인 명분을 갖고 태어났다.
뿐만 아니라 헌법규정 상호간에도 양립할 수 없는 규정으로 정상적인 민주정치실현을 불가능하게 하는 규정들이 있는데 이들 역시 하루빨리 개정하여 정상화해야 할 것이다. 근본적인 모순성을 갖고 있는 몇 개만 자적해 보면, 제8조는 ‘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며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라고 규정했는가 하면 제66조는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행정권의 수반으로서의 지위를 보장했고’ 또한 제67조와 제70조는 ‘대통령을 5년 단임으로 국민이 직접선출하게 하였기 때문에 정당의 정권창출기능을 완전히 박탈하여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대통령은 행정권의 수반이면서도 여당을 통하여 입법부까지 지배할 수 있게 되었고, 기능을 상실한 여당은 대통령의 권력아래 기생할 수밖에 없게 되었으며, 야당 역시 국정참여에의 길이 봉쇄됨으로써 그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극한투쟁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또한 대통령은 헌법이 주어진 임기동안 국민이나 국회에 대하여 그 어떤 책임도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집권여당 역시 정치현실에 직접 관여할 수 없기 때문에 정치적인 책임을 져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게 됐다. 따라서 현행 대통령제는 책임정치라는 민주정치를 실종시켰으며, 정당이 정책의 결정을 통해서 정권을 창출하고 의회와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정당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집권여당의 경우 대통령의 권력에 기생하며 대통령의 정책을 무조건 지지하는 수비대의 역할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야당 역시 대통령의 임기동안에는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전혀 없기 때문에 정책대결이라는 정당정치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기 보다는 차기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선동적인 정책을 개발하는데 주력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행헌법의 권력구조에서는 정당은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상적인 의회정치나 정당정치는 기대할 수 없고, 거기에는 야당은 공격하고 여당은 수비하는 대립과 충돌을 뛰어넘을 수 없게 됐다. 이런 현상을 우리는 흔히 국회의원이나 정당지도자의 자질부족 및 그 운영의 미숙성(未熟性)으로 돌리고 있지만 사실은 제도적인 모순에서 오는 구조적인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하루빨리 정상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민주정치란 정치지도자의 개인적인 역량에 의존하는 정치체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민주화와 민주적인 제도에 의하여 정치와 행정이 객관적으로 운영되는 정치체제이다. 모순투성이에다 시대에도 맞지 않는 어정쩡한 헌법을 가지고 정치지도자의 의중을 살피면서 대립 반목을 일삼아야 하는 소모적인 정치는 국가발전이나 자유민주주의정착을 위해서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부터라도 정치권은 개헌에 대하여 무조건 거부반응을 보일 것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와 국가발전에 무엇이 문제인가를 놓고 진지하게 토론하며 새로운 틀을 짜는데 심혈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