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시투구꽃
/최세라
이 조그만 풀꽃이 독초가 되기까지
세월은 그의 속을 얼마나 뜯고 할퀴었을까
의심의 계절이 가고 의심의 계절이 오고
퍼런 울음 삼키며 사약을 달이는 삶
피맺힌 이슬에 닿아
은수저가 삭아버리는 삶
그 이름에 박힌 금속성 이빨을 죄 뽑아 던진다 해도
얼마나 쭈그린 채 제 숨을 물어뜯었을까
이 조그만 풀꽃이 독초가 되기까지
- 시집 ‘복화술사의 거리’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각시투구꽃을 보셨나요? 여름 산에서 그 앙증맞고 예쁜 보랏빛 꽃을 오래 들여다본 적이 있습니다. 유독 작은 풀꽃에 숨을 빼앗기는 내 취향도 있지만 투구라는 섬찟한 모자를 씌운 어이없는 명명때문이지요. 더구나 예쁜 각시에게라면 너무 잔혹한 이름이 아닐까요? 아마 그 꽃은 이름의 무게 때문에 독을 키웠는지도, 쭈그린 채 제 숨을 물어뜯었는지도 모르지요. 금속성 이빨을 죄 뽑아 던져도 은수저가 삭아버리도록 사약을 달여도 제 속에 키운 독은 어쩌지 못하겠지만요. 협죽도나 각시투구꽃 같은 아름다운 꽃일수록 머금은 독이야 말로 치명적인 것을요. 그대 조심하십시오. 이 봄날 천지가 환장하도록 아름다운 꽃사태 속 자칫 무작정 빨대를 꽂으면 그대 영혼도 혼미해질지도 모르니까요. 실은 세상만사 독 아닌 것이 없더라구요. /이정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