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매화
/조길성
녹은 쇠에서 나온 것인데
그 녹이 쇠를 먹어 치운다*
다리 저는 짐승들이 시방 집으로 들지 못하고 한데 잠을 청하고 있습니다
사하라
바람이 잠든 밤에는 지구가 스스로 도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독한 담뱃불 하나 이승을 떠났다
네 눈빛이 내게로 오다가 얼어붙어 툭 부러져 내린 뒤에
이제는 술 먹지 않고도 울음이 네 발로 기어 나오는 나이
헛소리처럼 꽃이 피었습니다
죽은 친구가 귀신을 쓰다듬고 있는 골목 귀퉁이 누군가 쓰다버린 물감을 개어 바른 누런 창에 비치는 얼굴
네 눈에 숯불을 넣어주랴
*법구경에서
- 웹진 시인광장 2014년 4월호 신작시 / 웹진 시인광장
심장 모양의 작은 꽃. 옥황상제에게 쫓겨난 선녀가 물매화로 피어났다는 전설을 지닌 꽃. 푸른 지구의 눈(리차트 구조)과 물매화가 사하라 사막 밤하늘 아래 함께 돌고 있다. 고요한 밤, 한데 잠을 청하는 지치고 외로운 그 누군가도 지구의 도는 소리를 같이 듣는다. 귀 기울이는 그것은 물매화일 수도, 녹슨(힘이 다한) 쇠(사람)일 수도 있다. 자신의 녹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 속, 독하디독한 눈빛마저 이승을 떠날 때, 힘이 다한 눈빛은 얼어붙어 툭 부러지고, 녹슬고 언 마음은 아름다운 꽃(물매화)이 피고 지는 것조차도 헛소리만 같다. 이제는 술 먹지 않고도 울음이 네 발로 기어 나오는 나이, 그 쇠를 녹이고 닦을 잉걸불이 다시 활활 타오를 수는 없을까.
/김은옥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