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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렬 한나라당 대표가 벼랑 끝에 섰다. 벼랑도 벼랑 나름인데 그가 선 벼랑은 살아 남을 확률보다 그렇지 못할 확률이 높다. 그가 당대표 경선에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할 때만해도 ‘최틀러’답다고 했다.
‘최틀러’는 히틀러를 인용한 애칭이다. 아마도 행동거지(行動擧止)가 비슷해서 인지, 아니면 다른 유사점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본인이 굳이 마다하지 않은 것을 보면 싫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히틀러가 독일제국의 총통이 되기까지는 시련이 있었다. 1919년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당(나치스)에 입당해 얼마 후 당수가 됐으나, 1923년 뭔헨공화국을 타도하는 쿠데타 실패로 옥살이를 했다. 1년만에 풀려나 1933년 힌덴부르크 대통령에 의해 수상에 임명되고, 1934년 힌덴부르크가 죽자 총통이 됐다. 그러나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이 빌미가 돼 1945년 4월 30일 소련군이 베를린을 함락하기 직전 자살로 인생을 마감했다.
‘최틀러’의 정치 행적은 히틀러에 비할 것은 못된다. 그러나 일천한 한국 정치사 차원에서 보면 최틀러의 정치 역정도 드라마틱한 면은 있다.
‘최틀러’는 조선일보 편집국장 출신으로 5공 때인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한 이래 청와대 정무수석, 문공부장관, 노동부장관을 거쳐 한나라당 대표까지 됐으니, 그의 정치 20년은 탄탄대로였다.
‘최틀러’의 실수는 대선자금책임을 이회창 전 대통령후보에게 돌린 일이다. 법인의 채권채무가 승계되듯이, 정당의 영욕(榮辱) 역시 승계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깜빡한 모양이다.
보스는 책임을 질줄 알아야하고, 죽을 일이 있으면 먼저 죽을 각오를 해야하는데 그는 그 화살을 피하려다 정통에 맞은 셈이 됐다. 어차피 정치는 무상한 것이니 접어야할 때 접는 것도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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