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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자칼럼]‘냄비받침’ 시집 보내기

 

“시집 곧 보낼게요” 시집 우송이 늦어질 때의 변(辯)이다. 출산의 고통으로 회자되는 출간 후의 우송에 점점 꾀가 난다. 시집이 아무리 많아도 일반 독자에겐 먼 일. 시인끼리 나눠보기가 대부분인데 그마저도 벅차다. 받은 시집도 늘고 지인도 느는 만큼 우송 작업도 만만치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외로운 시집을 혼자만 볼 것인가. 당연히 시를 알거나 좋아하는 사람끼리나마 나눠 읽어야 시집도 세상 구경을 할 수 있다. 일반 독자가 안 사는 시집에 우송으로 콧바람을 쐬어주는 것이다. 그보다 우송이란 우정의 답신 같은 일종의 전통인즉, 주고받는 이들끼리 쌓인 아름다운 빚을 갚는 길이다. 시인들은 누구에겐가 받은 시집에 대한 예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도 시집 보내기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일일이 주소 찾아 봉투 쓰고 사인을 하며 시집을 보내기까지도 일이 많은데 인장을 찍는 경우는 정성이 배가된다. 요즘은 주소를 라벨로 해결해서 전보다 수월해진 편이지만 손으로 쓴 주소에 마음이 더 가기 마련이다.

시집을 보내고 나면 문자나 카톡으로 답신이 계속 답지한다. 그 중에는 손으로 직접 쓴 편지나 이메일도 간혹 받는다. 선배 문인일수록 귀감으로 되새기게 하는 예가 더 많다. 그런 편지들은 지울 수도 버릴 수도 없는 귀한 답신이라 서랍 속에 잘 담아놓고 힘들 때면 꺼내보는 응원 박수로 삼는다. 하지만 무슨 나누기든 문자로 가능해진 세상답게 문자 답신이 훨씬 많다. 그런 문자들도 문자 나름이라 상투적인 간단 답신부터 정독 후의 소감을 길게 쓰는 등 손편지 못지않은 정성까지 다양하게 보내므로 한동안은 전화가 뜨겁다. 시인이며 문예지 숫자가 독자에 비해 이상하게 많다는 우리 문단 상황에서도 짚이듯, 시집을 읽고 그에 대해 말하는 이도 대부분 시인들인 것이다.

그런 중에 시는 어렵다는 선입견도 재확인한다. 갈수록 알아먹기조차 힘든 ‘그들만의 리그’로 간다고, 난해시에 대한 비판도 꽤 나온다. 심지어 시를 좀 쉽게 쓰면 안 되냐는 애정 어린 부탁이나 조언도 더러 들린다. 그럼에도 시인들은 더 새로운 시를 찾아서 고통스러운 여정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 많은 시 중에서 자신만의 시를 발명하고 세우는 것 또한 창작의 운명임을 환기하지 않아도 그 고투를 쉬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영혼의 교감이라면 단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해서도 시를 써야 사는 ‘시에 들린’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듯 요즘 시에 대한 불만이 부쩍 커진 독자나 그럼에도 자신이 원하는 시를 찾아 고통을 마다않는 시인이나 시 사랑은 일종의 민족적 고질(痼疾)처럼 높다. 비록 비싼 커피 한 잔 값에 불과한 시집의 겸손한 값에도 시집을 사는 독자는 별로 없지만 말이다.

그래서 시집이 공해나 되지 않을까, 보내기를 망설이기도 한다. 좋은 책들 넘치는 세상으로 변변찮은 내 시집 보내기가 주저된다. 게다가 사놓고 미처 못 읽은 책이 다들 얼마나 많을까. 더욱이 사인해 받은 책들 쌓아두고 있으면 정성껏 보내준 저자에게 미안스럽고, 책에는 또 얼마나 눈치가 보이던가. 자리 차지 안 하는 얇은 시집이라도 책장에 부담주기는 마찬가지일 것. 그런 판에 사인한 시집이라고 곧바로 먼지더미나 폐지수레에 넘겨질 운명을 면하리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시집을 못 받으면 서운한 게 또 이 땅의 풍토라 시집 인심이란 이래저래 복잡 미묘하다. 오죽하면 ‘냄비받침’이나 하시라고 멋쩍게 전하는 식을 더 편히 쓰게 되었을까.

시집을 보내면 그래도 훑어보기라도 하려니 믿고 싶다. 한 편이라도 예전에 빠지던 시 맛을 돌아보게 한다면 시간 낭비의 불편만은 아닐 것이다. 아니 시 읽는 여유를 잠시만 가진대도 일단 멈춤의 좋은 회복이 아닐까. 그런데 과연 읽을 만한 시집인가? 그런 불안 속에 시집을 보내고 나면 사랑을 받든 구박을 받든 제 팔자거니 잊으려고 한다. 그럼에도 시집 보내기란 시 쓰기만큼이나 떨리고 설레고 달뜨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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