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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자 칼럼]참을 수 없는 예능의 가벼움

 

언제부턴가 예능이 방송을 장악했다. TV에서는 특히 대세 중의 대세가 예능이다. 시청률이라는 생살여탈권이 칼을 빼고 기다린다는 방송 특유의 사정이 구실이다. 그런 탓인지 많은 대화가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으로 시작해 연예인 뒷담화로 끝나기 일쑤다. 어쩌다 책 얘기를 꺼냈다간 공공의 적인 양 따돌려지는 경우도 꽤 있다.

이런 풍토가 물론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하지만 방송이 점점 예능을 국민적 스포츠모양 부추기는 것 같다. 가끔 독서량 발표로 건드리는 ‘책 안 읽는 국민’의 자괴감을 방송이 오히려 예능으로 조장하는 느낌인 것이다. 아무리 시청률에 죽고 사는 방송이고 시청자들이 재미를 더 찾는다 해도 거의 모든 프로그램이 예능화로 가는 것은 지나치다. 교양이라는 이름을 달고 더러 체면을 지키던 프로그램도 줄어서 지금은 눈 씻고 찾아봐야 명맥을 겨우 유지하는 정도다. 그마저도 사람들이 보기 어려운 심야 시간대에나 끼워넣기 식으로 배정하고 있어 프로그램의 존재 자체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엇보다 ‘웃겨야 산다’는 지상명령이라도 있는지 방송에서는 더 웃기려는 안달들이 문제다. 유머가 중요한 시대라지만 저급한 말놀이에 맞지도 않는 표현 범벅으로 쓴웃음을 주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이다. 게다가 “같아요”는 아직도 왜 그렇게 많이 쓰는지, 남 따라 하기놀이 같아 민망할 지경이다. 틀린 표현도 아무 거리낌이 없이 쓰면서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못 펴는 것은 주관식 찍기 교육의 폐해겠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으로 보고 읽고 느낀 것을 말하는 훈련이 안 됐기 때문이다. 우리네 교육이 그런 기회의 박탈 과정이었다면 어른이 되면서는 자신의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각자도생밖에 길이 없다. 그런데 전 국민이 날마다 보는 방송조차 농담 따먹기 식의 웃음 조제 일색으로 가니 그 폐해가 더 커 보이는 것이다.

프랑스는 토론이 국민적 스포츠라고들 한다. 어려서부터 자신만의 눈과 귀와 입을 제대로 길러준 교육의 힘이고 독서의 힘일 것이다. 어쩌다 그들이 말하는 방송을 보면 그런 주관이나 주체성이 뚜렷이 드러나서 우리네 말하기와는 완연히 다름을 확인하게 된다. 그런 데서도 보듯, 책이나 남의 말을 적당히 따와 말하다 보면 자신의 말을 세상에 내놓을 기회가 없어진다. 글쓰기에서도 남의 글을 밭뙈기로 퍼다 적당히 편집·포장하는 식을 자꾸 쓰면 자기만의 독창적 쓰기를 이룰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나의 눈과 귀와 입으로 세상을 읽고 쓰고 말하기’ 기회를 잃게 만든 우리 교육은 평생 문초도 부족한데, 평생 보는 TV 방송이 예능화로 한술을 크게 뜨고 있는 셈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이라는 소설이 있다. 한때 많이 회자되었는데 그 소설의 본래 주제보다 시류를 잘 반영한 제목 덕이었던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가벼운 말들로 가볍게 즐기는 데만 편승하는 풍조에 대해서는 비판이 있는데, 그럴 때 인용하는 말로 상종가를 쳤던 표현이다. 지금의 방송들이 똑 그렇게 예능으로 시청률을 잡는 판 역시 ‘참을 수 없는 방송의 가벼움’이라는 탓을 자초한다. 물론 리모콘이라는 저승사자를 꼭 잡은 채 돌릴 기회만 노리고 있는 시청자들도 일부 책임은 있겠다. 이 또한 교양 프로그램의 소멸 원인에 들이댈 항변이겠지만 그래도 공영방송은 지켜야 할 도리가 더 있지 않은가.

어느새 우리는 TV제국의 백성으로 살고 있다. 특히 아플 때면 TV 없이 어떻게 사나 싶을 만큼 높아지는 의존도나 독거 어른들의 반려 노릇은 큰 역할이 아닐 수 없다. 대중문화의 소외쯤 기꺼이 감수할 소수가 아니면 대부분은 TV가 제공하는 재미와 위로와 정보 등을 나누며 사는 것이다. 그럴수록 예능 위주의 방송 문제를 짚거나 상반되는 욕구도 전할 필요가 있겠다. 예능을 능가하는 교양 프로그램의 방식과 시선과 표현에 대한 바람이 또 다른 웃음의 판을 낳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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