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다. 또한 부패의 계절이기도 하다. 이틀 전 식탁 위에 밥 한 그릇 올려놓고 강원도 여행을 다녀와 보니 꽃이 하얗게 피어있다. 푸릇하고 흰 꽃이 빈 집을 지키겠다는 각오라도 한 듯 지구처럼 부풀어 있다.
습도도 높고 기온도 높다보니 먹을거리에 신경을 많이 써야할 때이다. 도마며 행주 등 주변 환경을 청결히 하고 가족 건강에 각별히 유의해야겠다.
이런 날씨엔 보리쌀 듬성듬성 섞인 밥에 새콤하게 익은 열무김치 듬뿍 넣고 고추장 한 숟가락에 들기름 조금 얹어 쓱쓱 비벼먹으면 일품이다. 식감이 좋아 눅눅해진 몸과 마음이 생기를 되찾는 느낌이 든다.
보리밥 생각을 하니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장맛비가 연일 내리던 날 보리밥 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보리밥에 칼국수를 시켜 놓고 있는데 누군가 와서 아는 척을 한다. 초면인 듯 구면인 사람이다. 미처 알아보지 못하니 본인 소개를 한다.
언젠가 우리 매장에서 피아노를 구입한 소비자다. 먼저 알아보지 못한 미안함과 아는 척 해주는 고마움이 함께 했다. 자기가 그동안 많이 아파서 못 알아봤을 거라며 민망함을 덜어주었다.
그 분도 일행이 있었고 나도 일행이 있으니 간단히 인사를 하고 각자 식사를 했다. 그 분이 먼저 나가면서 우리 식대도 지불했으니 맛있게 먹고 가라며 인사를 했다. 고마움에 나중에 조율이라도 한번 서비스해 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우중에 훈훈한 마음으로 식사를 했고 몇 달 후 그분 사망소식을 들었다. 뇌에 암이 번져 손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얼마지 않아 고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먹먹했다. 그가 내게 베푼 지상에서의 처음 식사이자 마지막 식사이다.
모른 척 해도 그만이고 굳이 식사대접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그럴 줄 알았으면 내가 먼저 식대를 지불할 것을 하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오래도록 마음을 잡았다. 소박한 한 끼 식사와 계획되지 않는 만남이었지만 얼마나 절박한 마음이었을지, 세상을 떠나면서 인연이 되었던 사람에게 밥 한 끼를 나누고자하는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살다보면 많은 욕심을 갖게 된다. 옷장을 열어보면 몇 해째 입지 않는 옷이 즐비하고 쇼핑을 하면서 꼭 필요하지 않는 물품을 충동구매하게 된다. 한동안은 홈쇼핑에 빠져 이것저것 사들였고 마트에 가면 하나 더하기 하나 상품을 그냥 지나치지 못해 사다 쌓기도 했다.
머리로는 소비를 줄이고 꼭 필요한 물품만 곁에 두고 가능한 가볍게 살아야한다고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사용하는 것이 있어도 더 좋은 제품이 있으면 사고 싶고 한두 번 입기 위해 고가의 의복을 마련하기도 한다.
먹을거리도 마찬가지다. 겨울이면 김치 통마다 김장을 가득 채워야 흐뭇하다. 결국 다 먹지도 못하고 이웃에 퍼 돌리고 음식물 쓰레기를 만들면서도 때가 되면 같은 욕심을 부린다. 지금도 냉동실을 열어보면 언제적 것인지도 모르는 생선토막이며 먹다 남긴 음식이 비닐봉지에 쌓여있지만 아까워서 버리지도 못하고 먹기는 왠지 찜찜해서 보관만 하게 된다.
작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겠다. 나누고 돌아보며 현명한 소비생활을 하리라 다짐해 본다. 얼마나 실천할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마음을 다 잡아 본다. 그녀가 베푼 마지막 식사를 떠올리며 누군가의 가슴에 오래도록 상기될 수 있는 아름다운 삶을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