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
/김천영
문 앞에 걸어 논
냉면이라는 글자가
바람에 하얗게 흩날리던 곳
첫 월급 타
설레며
냉면을 먹던 곳
눈이 수북이 쌓인
달밤을 걸어
그대와
그 집에서
처음 냉면을 먹던 날,
왜 울면서
뛰쳐나갔는지
이제야
그 마음 알 것 같습니다
이렇게 늦게
- 시화 / 경기 민예총 시화전 / 2016년 6월
마르셀 프르스트에게 홍차에 적신 마들렌이 있다면 시인에겐 추억의 냉면이 있나보다.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에 사무치는 음식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 때 그 장소에서 함께, 혹은 무슨 이유로 혼자서 쓸쓸히 먹은 음식의 맛엔 그 때의 감정이 내재해 있다. 음식 특유의 맛 속에 어떤 질감으로 남아 그 음식을 대할 때마다 곱씹히는 경우가 많다. 눈이 수북이 쌓인 달밤을 걸어 처음 그대와 냉면을 먹던 날 왜 울면서 뛰쳐나갔는지 이제서, 이렇게 늦게서야 그 마음 알 것 같다는 시인의 말에 아쉬움이 남는다. 그 때의 정황을 순식간에 펼쳐 놓는 냉면 한 그릇의 힘이 새삼 크게 느껴진다. /최기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