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은 건강 걱정 안 하고 돈도 많고, 자식도 잘 돼서 아무런 근심 없이 살아가기를 원한다. 하지만 바람일 뿐이지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살아가면서 한순간에 집안이 망할 수도 있고, 병에 걸리기도 하며, 자식들이 속을 썩일 수도 있는 등 우리를 덮치는 불행의 그림자가 수없이 많아서다. 이를 어느 누구도 비껴갈 수 없어 더욱 그렇다.
지난주 천안으로 시집간 딸과 카톡을 하면서 이 같은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소식이 궁금해 점심 식사 후 문자를 띄웠다. ‘별일 없지?’ 한참 후 돌아온 답변은 ‘지금 병원이에요. 잠시 후 다시 연락드릴게요’였다. 걱정이 앞서 재차 ‘누가 아프니’ 했더니. ‘우리가 아니라 시어머니요’라고 했다. ‘왜, 어디가’라는 물음에 5분쯤 지난 뒤 전화가 왔다. 내용은 이랬다. 이틀 전 식욕이 떨어지고 무기력해서 피곤해 그런 줄만 알았는데 오늘 갑자기 황달기가 있고 복수까지 차 응급실에 왔다는 것이다. 진찰 결과, 담도에 종양이 발견됐고 좀 더 자세한 증세를 알기 위해 CT를 촬영 중이며, 판독결과 나오면 또 연락드리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평소에 건강하고 생활력이 강해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고 경제 활동을 해온 안사돈의 병세 소식에 많이 당황했다. 그리고 앞으로 전개될 일이 걱정이었다. 아직 환갑도 안 된 것 같은데 큰일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러면서 시댁의 우환 속에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동분서주해야 할 딸의 모습도 오버랩 됐다.
검사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결국 안사돈은 서울 큰 병원으로 옮겨졌고 재검사 받고, 일단 항암치료부터 하자는 주치의의 권유대로 입원 6일 만에 집으로 내려왔다. 시댁으로 가면서 딸이 문자를 보내왔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에 시아버지를 비롯 온 식구가 충격에 휩싸였는데 정작 본인은 담담하면서 차분하다는 것”과 “14일부터 시작되는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이겨내려는 극복의 의지가 강하신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잘 위로, 격려해 드리고 너도 힘내라”는 답장을 보내며 마음속으로 우리 가정은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되는데 하는 기원을 했지만 심정은 착잡했다.
나부터도 그렇지만 사람들은 불행이 닥쳤을 때 원망을 많이 한다. ‘왜 나에게’, ‘우리 가정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등등. 특히 건강을 해쳤을 땐 더하다. 하지만 ‘병에 걸린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오히려 삶의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말처럼 현실을 곱씹어 보면 좌절만 할 일도 아니다. 옛 성인들의 ‘병고(病苦)로써 양약(良藥)을 삼으라’는 말이 있듯이 병에 걸리게 된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좋은 약이라고 생각한다면 ‘절망’보다는 ‘희망’이 더 가슴속에 용솟음 칠 수도 있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수많은 조직과 헤아릴 수 없는 세포들로 구성된 유기체이고 세월이 지나며 이 모든 것들이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 생각하면 희망을 품지 못할 이유도 없다. 특히 나이가 들어 조직이 노쇠해지면 자연스럽게 몸에 이상이 생기게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병에 걸렸을 때, 왜 나만 이런 병에 걸리게 되었는가라고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삶의 좋은 동반자로 여기게 될 게 분명하다.
스티브 잡스는 이에 대해 좋은 말을 남겼다. 췌장암에 걸린 이후 항상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살았지만, “곧 죽게 된다는 생각은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할 때마다 큰 도움이 된다. 사람들의 기대, 자존심,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 거의 모든 것들은 죽음 앞에서 무의미해지고 정말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이다.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무언가 잃을 게 있다는 생각의 함정을 피할 수 있다. 당신은 잃을 게 없으니 가슴이 시키는 대로 따르지 않을 이유도 없다”며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평가를 의식하지 않고 오직 지금 내가 해야 될 일이 무엇인가만을 생각하고 그 일에 매달릴 수 있었다고 했다.
많은 사람이 복 받고 잘살게 해달라고 기원한다. 불행은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하도록 빌기도 한다. 따라서 비는 복의 종류도 사람의 입장과 처지에 따라 다르다. 병이 든 사람은 건강하기를 원하고, 돈이 필요한 사람들은 부자 되기를 바라고, 아들과 딸들이 잘 살 수 있기를 기원한다. 그러나 이 같은 기원이 모두 이루어진다고 진정 복 받은 사람일까? 아니라 생각한다. 어려움과 고통을 겪게 될 때 원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이를 현명하게 받아들이고 극복해 가는 사람들이 참으로 복 받은 사람들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