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매(風媒)
/이홍섭
뻣뻣하게 서 있던 소나무 떼가
한순간,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실을 때가 있다
숨죽이던 파도가
일순간, 앞 파도의 등에 올라 탈 때가 있다
긴 긴 골짜기를 내려온 바람이
뎅뎅뎅, 절간 풍경을 때리는 아침
극락보전 앞마당을 가로지르던 숫두꺼비 한 마리가
몰록, 암놈 등에 올라 탄다
필경 바람의 일이다. 바람의 소행이 분명하다. 살랑살랑 나부끼는 풀밭 물결무늬부터 나무 뿌리째 뽑히고야 끝장을 보는 태풍에 이르기까지, 당신에게로 향하는 어이없는 마음의 풍향으로부터 사정없이 기울어서 마침내 격정의 쓰나미로 덮쳐오는 욕망의 너울까지, 그건 틀림없이 바람이 시킨 일. 그러므로 바람의 은유는 동적(動的)이다. 그가 매개하는 것은 소나무와 소나무의 이완, 파도와 파도의 중첩, 절간 풍경과 소리의 공명, 숫두꺼비와 암두꺼비와의 교집합. 그러고 보면 바람은 단순한 공기의 이동이 아니라 사물과 사물 간 끊임없는 교호작용을 일으키거나 돕는 생물 아닐까. 위 시는 평범한 자연현상의 묘사일 수도 있는 시의 전개가 끝 행의 ‘몰록’이란 단어 하나로 일순 살아 움직인다. 돈오돈수인가? 돈오점수인가? 몰록, 극락보전 앞에 깨달음의 법희가 완연하다 할 밖에……. /이정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