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되기 전 영화관 매니저로 일할 때 ‘작은 돌풍’을 일으킨 영화가 있었다. 바로 ‘한공주’다. ‘한공주’는 지난 2004년 경남 밀양에서 발생한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다. 영화를 본 국민들에게 밀양사건은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최근 밀양사건과 범죄유형은 물론 피해자들의 삶에 미친 영향에 있어서 매우 유사한 모습의 집단 성폭행 기사를 두 개나 접하게 됐다. 하나는 22명의 고등학생들이 2명의 여중생들을(도봉 성폭행사건), 또 다른 하나는 4명의 고등학생들이 1명의 여고생을 성폭행한 사건이다.
인면수심의 성폭행 가해자들은 죗값을 치르기는 커녕 일부는 외국명문대에 진학하거나 군 복무를 하며 정상적인 생활을 해왔다. 반면 피해자들은 학업을 포기하고 대인기피증을 겪으며 평생 회복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다.
집단 성폭행사건은 1차 범죄 이후에도 동일한 피해자를 대상으로 범죄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가해자가 여럿이기에 피해자의 보복범죄에 대한 두려움은 배가돼 신고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단서로부터 범죄의 진실을 밝혀내는 경찰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현재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해 경찰은 통합지원센터나 신변보호 등 수많은 제도를 운영해 피해자들의 심리적 안정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성폭행 피해자들이 온전한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사후적 지원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사회 전체가 이들의 아픔을 이해하며, 성폭행은 피해자의 잘못이 아닌 가해자들의 왜곡된 성욕으로 인한 범죄라는 라포가 형성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건을 재조명하고 진실을 알리는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미디어의 역할, 성범죄에 대한 국민들의 끝없는 관심,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사법부의 법 집행 등 온 국민의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범죄 이후에도 고통이 반복되는 성폭력의 악순환, 그 고리를 끊는데 우리 모두의 관심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