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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구 칼럼]지치다 못 해

 

7월 중순이면 슬슬 더위에 지치기 시작해서 8월 초면 ‘지치다 못해’ 차일피일 미루어 오던 늦휴가를 떠나게 된다. 정작 떠나기는 했지만 고속도로에서 지치고 휴양지에서 지치고 귀가하면 피곤에 지친다. 쉬는 것에 지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일자리 찾아 지치는 사람들이 이들보다 더 지친다. 삶에 지쳐가며 살고자 태어난 것은 아닌데 지치다 못해 어떤 사람은 자살도 감행한다. 밥벌이에 지치고 공부에 지치고 취업에 지치고 직장에서 지치고 가끔 가족에게도 지치고 자녀양육과 노부모 공양에 지치고 병에 지쳐 늙어 결국 죽음에 이르는 것이 인생 같다. 그러나 지치는 틈새에 보람과 행복도 있기 마련이다.

나이가 들면서 낯설게 들렸던 ‘생노병사’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교회 벽에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해 주겠다’는 성경구절을 적은 현수막을 종종 본다. 교회나 절에 가서 마음과 육신이 위로받고 쉴 수 있을 만큼의 여유만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충전기관이 어디 있겠느냐 싶지만, 그곳에 가서 더 큰 짐을 지지나 않으면 다행인 것이 요즘 종교기관의 현상이다. 원수는 물론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듣고 아멘, 아멘 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에만 천만 명이 넘는데도 사회의 도덕 불감증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고 자살자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 이후 국민들의 정의감이 부쩍 고양되었다고는 하지만 세상의 불의에 관한 것들은 여전히 그저 지나가는 뉴스일 뿐이다. 불특정 다수를 살해한 자들은 모두 조현병자라고 한다.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누가, 그리고 무엇이 삶을 지치게 만들기에 과거에는 상상도 못하던 일들이 백주에 일어나고 있는지 잠시 생각을 해봐야 한다.

생각해 보면 이것은 과거의 가난을 탈피하고자 옆 뒤를 안보고 진보했던 욕망의 결과이다. 전쟁승리와 부의 축적과 출세를 위한 경쟁은 결국 인성을 망가뜨렸고 승리자 없는 대부분의 낙오자들은 경쟁의 과정 중에 모두들 지쳐 주변의 그 어떤 위로와 격려의 말과 공동선을 향한 행위에도 시니컬해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쳐도 안 지치는 사람들이 있다면 사기꾼, 정치인들이다. 특이한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결코 지치지 않는다. 종교인, 교수, 법조인, 의사, 기업 회장은 자살을 해도 현직 국회의원이 자살했다는 뉴스는 거의 들어본 기억이 없다. 수십 년 전, 서울대 입학 율에 관한 인터뷰에서 임학과 교수 한 분이 법대와 비교하면서 사회정의 구현과 억울한 자를 위해 법조인이 되겠다고 희망하는 젊은이들은 이렇게 많은데 나라를 녹화하겠다고 하는 청년들이 별로 없는 참 특이한 나라라고 꼬집었던 기억이 있다.

살인, 기아, 난민, 테러와 같은 빅뉴스의 홍수 속에서 그 어떤 것에도 무감한 국민들은 북한과 전쟁이 시작되고 북한이 핵을 쏘았다는 뉴스라면 혹시 작은 충격을 받을지 모른다. 그 충격도 자신과 가족에 대한 걱정으로 생기는 충격이지 나라와 국민들의 생명에 대한 걱정은 그 다음일 듯싶다. 이정도로 무감해진 현대 한국의 도시민들은 9·11 테러보다 더 쇼킹한 큰 뉴스가 아닌 한은 그 무엇에도 감흥하지 못한다. 이스탄불에서 파리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슬람 무장 IS테러는 그저 다른 나라 소식일 뿐이다. 당장 내 몸이 지쳐있고 찌들어 있기 때문에 옆을 둘러볼 마음이 생길 리 없다. 어릴 적에 읽었던 동화 같은 나라, 에덴동산, 유토피아는 북 유럽, 스위스 같은 일부 나라에나 가야 조금 보일 뿐 이 세상에는 없다.

7세기 당나라 ‘영가현각’스님은 ‘증도가’에서 ‘배움을 끊은 한가한 도인은 망상을 없애지 않고 진리도 구하지 않는다’고 했다. 모두 노자 장자처럼 살기를 희망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연결되는 그 하루에 지치다 못해 쓰러져간다. 대통령 한 사람이 바뀌면 나라가 갑자기 엄청 바뀌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하지만 정작 바뀌어도 하루하루가 느닷없이 살맛나게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정치 경제 문화 환경, 금수저 흙수저 탓으로 돌리며 산다면 그 사람의 하루하루는 더 지쳐갈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이미 국민들은 오늘도 지친 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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