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로 쏟아지는 장마 비가 앞이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내린다. 청평에서 혼자 출발한 나는 어렵사리 운전을 해가면서 생각을 한다. 이렇게 폭우가 내리는데 몇 명이나 나오겠어. 도박장을 막는 것도 중요하고, 버스를 대절해서 온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기록적으로 쏟아지는 폭우에 과연 몇 분이나 나오실까…. 군청을 향해 가는데 지난주 면사무소 집회가 떠오르며 오늘도 그날 못지않으리라는 기대를 해본다.
군청 앞은 폭우가 쏟아짐에도 매우 부산했다. 방금 버스에서 내린 분들이 우비를 챙겨 입고 무언의 항의를 의미하는 X자가 그려진 마스크를 하고 아무런 글자도 쓰여 있지 않은 흰 바탕에 현수막을 들고 도열하듯 군청 정문 양쪽으로 늘어서기 시작했다. 폭우 피해가 걱정될 정도로 비는 계속해서 퍼부었고 그러함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항의의 대열은 늘어만 갔다. 대열 속에는 어린 아이를 업은 애기 엄마도 두 분이 있고 만삭은 아니어도 제법 부른 배를 한 임산부도 함께하는 것을 보면 도박장인 스크린 경마장이 지역 사회를 병들게 하는 것은 물론 자식들에 미래를 어둠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쏟아붓는 폭우만큼이나 강하게 다가선 듯 하다.
가평군청 정문에 한참을 서 있으니 평지가 아니라 그런지 한쪽 다리와 허리가 불편해지는데 나만 그런 것은 아닌지 옆에 서있는 사람도 연실 발을 들었다 놨다 한다. 엄청난 폭우 속에서도 지리를 뜨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면 대단한 의지가 보인다. 사이사이 지나는 사람들이나 함께하는 주민들 그리고 면장님은 엄마 등에 업힌 아이가 감기라도 걸릴세라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청사 안으로 들어가기를 권한다. 그러나 기필코 스크린 경마장을 허가하지 않겠다는 군수님의 확답을 받기 전에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로 거절하는 모습에는 결연함마저 느껴진다.
설악면 각 단체를 대표하는 주민 대표 일곱 분들이 군수실에서 군수님에게 스크린 경마장을 반대한다는 주민 3천802명의 서명서를 전달했다. 군수님의 결단을 촉구하는 마음은 밖에서 비를 맞으며 무언의 시위를 하는 주민들이나 군수실에서 담판을 지으려는 주민 대표들이나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군수님 또한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될 수도 있다는 논리로 다가서는 사업자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었으리라. 가뜩이나 재정 자립도가 약한 우리 지역의 수장으로서는 지역 경제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고용 창출이 된다면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면 일단은 마음이 동할 수밖에 없었으리다. 어느 누가 그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지역에 보탬이 된다는데 관심을 갖지 않겠는가.
밖에서 무언 시위를 하는 주민들보다 군수실에서의 회담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길게 느껴졌을지도 모를 시간이다. 두어 시간 정도 흘렀을까. 대책 위원장이 큰소리로 모두 청사내로 들어오란다. 군수님이 확고한 의지로 불허가를 천명하셨고, 주민들의 동의가 없는 사업에는 절대로 사업 승인을 내주지 않겠다고. 그러나 대열은 흐트러질 듯하다 제자리에 멈추어 선다. 군수님이 빗속에서 시위를 하던 주민들과 수고하셨다는 위로의 말과 함께 일일이 악수를 청하고 있었다. 그의 굳은 표정 뒤에서 뭔가 보였다. ‘마치 여러분에게서 가평에 희망을 봅니다’라고 하는 듯 했다. 여전히 쏟아지는 빗속에서 누군가 한마디 외치는 말이 오늘을 총 정리하는 듯 했다. “군수님 고맙습니다. 하얀 현수막에 글자가 올라가지 않게 해주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