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피리
/엄계옥
어매는 독작골 보리밭에 앉아
멧비둘기처럼 울었다
모식골 강변 깊어 그 소리 아무도 듣지 못했다
집채만 한 울음 클롭 서클*
소용돌이가 되어 골짝을 몰았다
돌각에 묻힌 한 살도 안 된
고추가 아까우서
고추가 아까워서
어매는 가랑이를 벌리고 앉아
휘모리 중중모리로 산봉우리에 널었다
나는 고추를 달고 태어나지 못한 게
죄인 것만 같아 골짝 너머로 흰나비처럼 가고 싶었다
아베는 섭벌이 되어 떠돌고
어매는 샘이 깊어서 평생을 울었다
내 귀는 오랫동안 그 소리에 두들겨 맞느라
퍼렇게 멍이 들었다
*Crop Circle: 곡물 밭에 생긴 거대하고 정교한 기하학적 디자인의 선과 원형그림.
-시집‘내가 잠깐 한눈 판 사이’
그땐 그랬지, 한 집 건너 죽은 아이를 파묻고 온 부모가 혼절하는 일 비일비재했다. 어 려서부터 어둠이 좋아 나의 하굣길은 늘 한밤이었다. 산모롱이엔 성황당, 그 뒤로는 애총이 즐비했다. 비라도 부슬거리면 무엇인가 나타나 멱을 낚아챌 것만 같고 응애응애 애기 울음이 귀를 후비는 것 같아 머리카락이 쭈뼛 일어서곤 했었다. 그리 흔하던 죽음이지만 가족에겐 얼마나 처절한 고통이었을까. 화자는 그런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자란 아픈 기억이 멍으로 퍼렇게 남아있는 것이다. 최근엔 묻지마 살인의 표적이 된 여자라는 이름, 그 오랜 소외와 질시의 역사 한 페이지에서 시인은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맞닥뜨린 그 이중의 고통을 견뎌온 것이다. 어매의 울음이 내 울음 되어 평생 보리피리소리처럼 떠도는 것이다. /이정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