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는 창덕궁 후원에서 아름다운 전경 10곳을 뽑았는데 8경이 관덕정(觀德亭)이다. 인조가 ‘청록의 빛’이라는 뜻의 취미정을 건립했으나 나중에 관덕정으로 개명하고 활 쏘는 사정(射亭)으로 기록하고 있어 이곳이 군사훈련과 무과시험과 관련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관덕정은 대온실의 동쪽 언덕에 2칸 건물로 남서향으로 자리하는데 건물을 보면 이상한 생각이 든다. 건물은 비합리적인 구조로 구성되어 있고, 건물 앞에 있는 초석은 활 쏘는 장소였음을 나타내고 있는데 과연 원형인지 의심이 들게 한다.
재료의 마감 상태를 볼 때 근래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며 여기저기 복원에 대한 자료를 찾아봤으나 아직 이에 대한 내용을 알아내지 못했다.
‘동궐도’에서 관덕정은 2칸 건물로 서남향을 하고 있으며 뒤편에는 ‘ㄱ’자 꺾인 5칸의 벽이 없는 행각이 있고 남쪽으로는 궁궐에서 성균관으로 가는 길과 그 출입문인 집춘문(集春門)이 있다. 근대 자료인 ‘동궐도형(1907년)’에서는 관덕정과 뒤에 있는 행각은 없고 대신 관덕정의 자리에 서남향이 아닌 서향을 한 ‘3칸짜리 건물’이 보여 구한말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현재 복원된 관덕정은 문이 없는 2칸 건물로 팔작지붕으로 겹처마를 하고 있으며 초익공의 소로수장(한쪽면만 있는 딱지소로)으로 단청을 하고 있다. 크기는 정면 20자(6천240㎜), 측면 12자(3천760㎜)이지만 자세히 보면 정면 2칸이 아니라 한 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면 중앙에 있는 기둥은 구조적 역할을 하지 않는 샛기둥으로, 입면을 2칸처럼 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면이 20자나 되는 긴 길이인데 기둥을 설치하지 않아 지붕 하중이 2개의 대들보로 내려와 창방으로 전달되고 20자의 창방은 양쪽 끝에 있는 기둥에 그 힘을 전달해 구조역학적으로 보면 매우 비합리적으로 보인다. 전통 건축에서는 보통 한 칸의 길이는 8자로 하고 있으며, 예외로 크게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도 10자를 넘지 않고 있다. 주칸의 길이가 커야 하는 특이한 경우로는 성곽 문루의 중앙 칸으로 기둥 하중이 성문의 천장으로 전달되면 안 되기 때문에 문루 중앙 칸의 길이는 성문의 폭보다 더 크게 하고 있다.
그러나 관덕정의 경우 무리해서 큰 주칸을 만들어야 할 이유를 잘 모르겠다. 혹시 전체를 열고자 중앙에 기둥 없이 처리한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샛기둥을 세워 입면을 2칸으로 분리하고 있어 일반 건물의 입면과 다르지 않은데 중앙기둥을 없애고 대신 거대한 창방을 설치한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궁궐건축은 뛰어난 건축 장인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민간건축보다 과학적으로 진일보된 건축구조를 나타내고 있는데 관덕정은 오히려 구조역학의 퇴보를 보여주는 씁쓸한 건물이다.
궁궐건물은 위계에 따라 구조와 장식을 달리하는데 이런 부분도 ‘동궐도’에서 잘 나타나 있다. 관덕정을 보면 부용정과 같이 공포가 있고 여기에 녹색이 칠해져 있으며 사방에 분합문이 설치되어 있어 위계가 높은 건물이라 할 수 있다.
관덕정은 퇴칸이 없어 들문을 할 경우 문이 처마 밖으로 나가기 때문에 일반 여닫이문으로 만들어야 하므로 관덕정은 지금처럼 개방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정조는 군사훈련을 관전하고 사격을 잘한 군인들에게 상을 줄 때 이곳을 이용하였다. 그리고 순조의 관덕풍림의 시에서는 이곳을 옥대(玉臺)라 표현하고 있어 이곳이 일반 정자가 아니라 국왕이 일종의 업무를 하는 곳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재 관덕정은 정면 2칸을 1칸 구조로, 이익공양식을 초익공으로, 폐쇄공간에서 개방공간으로 만들었고, 건물 앞에 4개의 초석을 설치하여 이곳이 활 쏘는 장소임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 건물에서 활을 쏘거나 휴식하는 정자하고는 거리가 있다고 보며 활을 쏘는 시합이나 훈련 등 군사와 관련한 국왕의 업무 공간으로 건너에 있는 영화당과 같은 용도로 해석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