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악 - Prelude
/정재학
무조(無調))가 길을 떠나자
감옥이 넓어진다
이야기하는 선율은 노래와 거리를 두었고
여러 음과 음향이 이별과 만남을 반복했다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악보
비명이 음악이 되면
음의 색채를 혀 안에 굴려 넣고
범람하는 소리의 하류를 음미할 수 있다
수평선이 수직선으로 회전하는 꿈처럼 황홀했다
무조는 몇몇 신음과 불안한 소리들을
악보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시인의 ‘Edges of illusion’이란 난해시를 읽고 ‘존 서먼’의 동명의 곡을 찾아 들었었다. 일정한 패턴의 아르페지오, 그 위에 얹히는 바리톤 색소폰 음색이 몽환적 비감을 자아내던, 그 음악에서 어떻게 가라앉는 기타와 현을 켜는 갈치를 유추해낼 수 있는지,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소리 없는 꿈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가 고교시절 뮤지션을 꿈꾸며 밴드활동을 했다는 걸 알고 나서야 자신의 못 이룬 꿈과 뒤틀린 현실을 은유한 것 아닐까 추측한 적이 있다. 시인의 내면이 얼마나 불안하기에 無調가 되어 길 떠나는가. 아무런 調性 없이 스스로 감옥을 넓히려는가. 드디어 청각은 시각으로, 수평선은 수직선으로 전복돼 범람하는 소리의 하류에 닿으면 그가 몇몇 신음과 불안한 소리들로 써낸 시의 속살을 엿볼 수 있을까?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다. 그의 시세계가 전위음악과 ‘동해안별신굿, ‘진도씻김굿’ 사이를 갈마들 듯 모더니즘시의 선봉인 그는 아직도 2G폰의 주인임을 모시인의 출판기념회에서 보았다. 시인의 무구한 표정과 더불어 참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정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