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처음 400조를 넘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심의가 지난주 시작됐다. 예산안에 대한 협조를 당부하는 지난 24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 도중 개헌을 들고 나왔고, 그날 저녁 ‘최순실 국정농단’의 일부 실체가 언론에 보도됐다. 곧바로 정국은 소용돌이쳤고, 나라와 국민은 일종의 패닉상태에 빠져있다. 그렇다고 해서 나라의 살림과 민생에 직결되는 예산안에 대한 국회의 심의활동이 위축된다거나, 본말이 흐려져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아도 내년도 예산안은 미르·K스포츠재단이라는 최대 쟁점과 법인세, 누리과정 예산, 노동개혁법과 서비스활성화법 등 숱한 쟁점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심사가 순탄치 않을 것이란 전망인 상태다.
박 대통령은 물론 정세균 국회의장도 이번 만큼은 법정처리시한인 오는 12월 2일까지 반드시 처리해줄 것을 국회에 당부했다. 그러나 여소야대의 국회가 구성된 이후 처음으로 진행되는데다 앞에 언급한 쟁점에 대해 정부·여당과 야권의 입장 차가 워낙 커 예산안의 법정기한내 통과에 발목을 잡지나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20대 국회의 첫 국정감사에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미르·K스포츠재단, 송민순 회고록 등에 대한 정쟁으로 망쳤는데 이번 예산안 심의에서도 이같은 일이 벌어져서는 안된다. 국정감사 증인들의 불출석을 연계시켜 각 상위원회가 파행을 해서도 안 된다.
더욱이 이른바 ‘쪽지예산’도 이젠 청탁금지법으로 통하지 않게 됐다. 특히 내년도 예산안은 처음으로 400조를 돌파해 민생과 경제살리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국회의원들은 언제나 민생안정을 부르짖어왔기에 이번에는 이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20대 국회 출범 이후에도 여야는 민생을 챙기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기에 더 그렇다. 돋보기를 대는 심정으로 정밀심사를 통해 불요불급한 예산을 대폭 줄이고 국민의 혈세가 엉뚱한 곳으로 새지 않도록 해야 함은 물론이다.
예산안 심의는 국정감사, 법률안제출과 함께 국회의 가장 중요하고도 고유한 권한이자 의무다.
자칫 소모적인 정쟁이나 벌이고 각종 의혹이나 폭로하는 자리가 된다면 국민들은 또 실망할 것이다. 예산안 처리의 법정시한이 지켜진 게 언제인지도 모른다. 정쟁은 정쟁이고, 예산은 나라의 살림살이다. 11월 말까지 심의를 끝내려 한다면 이제 한달이어서 길지 않은 시간이다. 철저하고도 치밀한 예산심의를 통해 국민 앞에 칭찬 한번 받는 국회의원들이 됐으면 좋겠다.